처칠의 혜안과 저질의 훼안
지난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다. 삼천여 명이 넘는 외신기자들이 서울로 몰려들었고 남북회담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정말로 비핵화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규모나 분위기나 내용에서 기대한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온 역사적인 회담이었다. 모두들 감동스러워하고 어리둥절해하고 설레고 또 여운이 묘하게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말까지
북한이 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하여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반전이다. 6개월만에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 남북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여 평양냉면을 먹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구세력들의 반응은 잔치집에서 차마 곡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함과 떨떠름함이다. “억지춘양”으로 생색내는 발언을 내놓을 따름이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구석도 있다. 자신들의 지지율은 바닥이고 뭘 해도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고꾸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답답함이 있다. 하지만 전쟁을 피하고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대의를 잊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특히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호의호식하던 야당을 이끌고 있는 홍준표씨의 페이스북 끄적임은 그 극단을 보여준다. 이념과 아집에 사로잡힌
정신줄과 무책임하고 비열한 말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홍준표의 끄적임은 이유가 없다
홍준표씨는 27일 “결국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했습니다. 북의 통일전선 전략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대로 받아 적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발표문입니다. … 대북문제도 대국민쇼로 일관하는 저들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적었다. 28일에는 “이번 남북 공동선언은 이전의 남북 선언보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에 불과합니다. … 미국은 이런 류의 위장평화 회담은 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라고 끄적였다.
29일에는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 됩니다. 여덟
번을 속고도 아홉 번째는 참말이라고 믿고 과연 정상회담을 한 것일까요?”라고 남북회담을 깎아내렸다.
한마디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위장평화쇼”라는
것이다. 물론 지난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올 때도 위장평화라고 했고 문재인씨를 “쇼통”이라고 비난했다. 또 북핵
폐기나 구체적인 방법이 논의된 것이 아니니 말의 성찬이라는 것이다. 겨울올림픽 때도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핵실험을 중단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북한의 시간끌기 전략에 넘어가는 짓이라고 쏘아댔다. 평양에서 경기가 열리는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평양올림픽”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올림픽이든 정상회담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실속없이 쇼만 벌이면서 북한에게 시간을 벌어주다가 “나라를 통째로
넘기”려는 종북좌파들의 난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이든 청와대든 여당이든 잘못했고, 잘못하고 있고, 또 잘못해야만 한다는
자기주문에 가깝다. 회담을 하면 한다고 비난하고, 안하면 안한다고 비난하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다고 비난할 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씨가 하자는대로 문재인씨가 허가없이 북한땅을 넘어갔다 온 것을 시비걸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럼 뭐하자는 것인가? 쇼라도 해라
사실과 상식과 이성과 거리가 먼 얘기라서 굳이
시시콜콜 따지는 일은 부질없다. 그런데도 그쪽 사람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그럼 뭐하자는 것인가? 완전한 비핵화를 당장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위장이고 쇼라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왜 북한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스스로 비핵화를 해야 하나?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데 왜 북한이 남한과 비핵화를 협상해야 하나? 홍준표가 핵무기개발을 당장 중지하고
비핵화하라고 말하면 김정은이 “네 형님, 알겠습니다”라고 답해야 하나? 안한다고 하면 트럼프에게 부탁해서 전투기 띄우고 미사일
날릴 것인가?
아무리 아홉 번을 속는다 쳐도 “판문점 선언”을
해서 손해날 것이 무엇인가? 백번을 양보해도 수시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보다는 같이 모여서 냉면 먹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퍼주기를 했다지만(이명박근혜 정권에서도 북한에 돈을 줬으면서도 이렇게 비난하는 것은 야비하다), “돈푼”
주면서 미사일 쏘지 말고 조용히 지내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안보 어쩌구 걱정했지만 북한의 도발을 단호하게 제압한 것은
민주 정권이었고 비참하게 패퇴한 것은 현재 홍준표씨가 이끄는 수구세력들이었다. “쇼통”이라고 비난하지만 왜 이명박근혜 정권은
그런 “쇼”도 못하면서 방사포 맞고 비실거렸단 말인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연다는데 어찌 “생쇼”인들 마다하겠는가?
이명박씨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한다면
10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을 3천 달러로 높여주겠다는 이른바 “비핵개방 3000”을 내놓았다.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제안이
아니라 북한을 욕보이고 비방하는 험담이다. “남한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사회주의(주체사상)를 개방한다면 당장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격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며 흡수통일을 준비한다고 김칫국을 마신 박근혜씨도 마찬가지다. 핵을 포기하도록 방법을
강구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이명박근혜 모두 자기 얘기만(그것도 상대가 기분나빠할 소리)
근사하게 늘어놓고 자화자찬하였다. 상대방과의 진지한 협상과 외교가 아닌 그냥 “지만 몸달아서 해대는” 용두질이었다.
처칠의 혜안? 저질의 훼안?
홍준표씨는 29일 페이스북에 “히틀러의
위장평화정책에 놀아난 체임벌린보다도 당시는 비난받던 처칠의 혜안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며 기염을 토했다. 현재 북한이
남한과 일본을 침공하여 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키기라도 한단 말인가? 지난 10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그 “처칠의 혜안”은 대체
어디서 무얼 했길래 여기 저기 떨어지는 미사일만 세고 있었단 말인가? 판문점 선언문이 김정은이 불러준 것이라는 “혜안”(대체 어찌 알았을까?)이
있다면 앞으로 북한이 어찌 할지, 미국은 어찌 할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쪽집게처럼 콕 짚어줄 일이다. 그 신묘한
천리안을 마음껏 뽐내어 단숨에 평화와 통일을 이뤄낼 일이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라는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뜬금없이 처칠의 혜안을
운운한다면 무책임하다. 연애 중인 노총각에게 아직 혼인은 안했으니 연애질이 전혀 쓸데없다고 힐난하는 짓이다.
현재 북한이 무엇을 위장한단 말인가. 달리
내놓을 패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작년까지 가진 돈 다 긁어 모아서 미사일을 쏘아대서 긴장을 최고조로 올린 후에,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국면을 전환하여 마지막 판에 올인하겠다는 계산일 터이다. 이 기세를 몰아 빨리 판을 깔고 광을 제값에 팔아야 할 입장이다.
핵무기 보유국으로 선언한 마당에 뭐하러 시간을 벌 것인가? 세계가 지켜본 정상회담에서 뭐하러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겠는가?
세계인의 관심과 호평 속에 심지어는 아베나 트럼프마저도 지지하고 있는 회담아닌가? 내일 당장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쏘고 핵개발을
계속 하겠다고 한다면 김정은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홍씨가 간파했다는 위장평화술은 삐뚤어진 이념과 아집에서 나온 망상이자
해괴駭怪한 망발이다.
홍준표씨는 28일 “우리의 문제를 엉뚱하게
중개자로 자임한 문정권 … 남북문제를 미국간의 긴장문제로 만들어가고 있는 문정권의 외눈박이 외교”(28일)라고 비난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설화쇼”를 벌인다면 상습범이자 만성병이다. 처칠의 혜안慧眼이라…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낸 수구 저질의
희망사항이다. 남을 헐뜯고 해치는 “저질의 훼안毁眼”일 뿐이다. 꽉막힌 남북관계를 뚝심과 인내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헐뜯는 혈안血眼이다. 남북한 국민들의 오랜 염원을 훼손하고 무너뜨리는 몹쓸 눈이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애꾸눈이요, 선거에서
참패하고 당을 허물고 깨드리는 어리석은 눈이다. 혜안은 커녕 지방선거 후 자신의 운명도 알지 못하거나 애써 모른 체하는
까막눈이다. 담벼락에 "문재인 김정은 시러"라고 휘갈긴 철딱서니없는 낙서질이다. 촛불에 혼비백산한 수구세력의 참담한 현실이다.
2018.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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