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기자간담회 관전평: 조국보다 기자?

어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장시간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날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못하게 됨에 따라 조후보자가 민주당에게 소명기회를 요청하여 마련한 자리였다. 나는 조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소리를 듣긴 했지만 사실 잘 모르는 분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어떠한지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간담회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본인의 입으로 어떻게 이런 저런 의혹을 설명하는지를 살펴봤다. 그의 눈빛과 표정과 몸짓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몇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조국은 반듯한 사람이다. 이른바 강남좌파라지만 충분히 현실을 치열하게 살았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다. 그의 말과 눈빛이 증명한다. 여식의 진학이나 인턴이나 장학금 문제를 사과하긴 했지만 과한 비난이다. 그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놓치고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그런 수많은 일상의 조각일 뿐이다. 조국이 아무리 잘생기고, 돈많고, 공부잘하는 완벽남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는 그냥 사람으로 살아왔다. 이런 사람에게 범죄사실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검찰이 욕보겠다.   둘째, 기자들에게 화가 난다. 도대체 언론사가 어떤 자들을 선발하여 기자질을 시키는지 궁금하다. 어제 간담회에 나와서 질문하는 것만 보면 멀쩡한 기자가 극히 드물다는 생각이다. 그들이 주장하고 질문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으나, 말하고 듣는 수준이 참담한 지경이다. 세 시간 전에 통보해서 간담회가 열렸다는 것으로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1. 출입기자가 300여명이라는데 다들 어디 갔는가? 기껏 해봤자 100여명이나 나왔을까? 수많은 기사를 쏟아낸 언론사 가자들이라면 당연히 당사자인 조후보자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봐야 했다. 간담회가 10시간이 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책임있는 언론사라면 정예기자를 보내서 파상공격을 했어야 했다. 책임있는 기자라면 취재된 사실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어 자신의 기사를 검증해야 했다. 무책임했다. 하지만 노련한 기자보다는 그냥 국회에 구경나와서 화면에 얼굴이나 비추려

처칠의 혜안과 저질의 훼안

지난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다. 삼천여 명이 넘는 외신기자들이 서울로 몰려들었고 남북회담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정말로 비핵화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규모나 분위기나 내용에서 기대한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온 역사적인 회담이었다. 모두들 감동스러워하고 어리둥절해하고 설레고 또 여운이 묘하게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말까지 북한이 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하여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반전이다. 6개월만에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 남북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여 평양냉면을 먹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구세력들의 반응은 잔치집에서 차마 곡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함과 떨떠름함이다. “억지춘양”으로 생색내는 발언을 내놓을 따름이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구석도 있다. 자신들의 지지율은 바닥이고 뭘 해도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고꾸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답답함이 있다. 하지만 전쟁을 피하고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대의를 잊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특히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호의호식하던 야당을 이끌고 있는 홍준표씨의 페이스북 끄적임은 그 극단을 보여준다. 이념과 아집에 사로잡힌 정신줄과 무책임하고 비열한 말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홍준표의 끄적임은 이유가 없다 홍준표씨는 27일 “결국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했습니다. 북의 통일전선 전략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대로 받아 적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발표문입니다. … 대북문제도 대국민쇼로 일관하는 저들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적었다. 28일에는 “이번 남북 공동선언은 이전의 남북 선언보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조차 명기하지 못한 말의 성찬

빨간불인데도 지나가는 "막가는 차"

한국사회와 다른 나라 사회를 종종 비교하게 된다.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쁜 것도 있다. 다른 나라와 다른 나쁜 것을 발견할 때면 부끄러움을 느낄 뿐더러 가끔씩은 참담해질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차를 목격할 때다. 말 그대로 "막가는 차"들이다. 얼마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머리가 쭈삣 뻗치는 경험을 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다가 파란불로 바뀌어 (운전자에게는 빨간불)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멀리 오른쪽에서 승용차가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당연히 멈추리라고 생각하고 횡단보도 절반을 넘어서 두어 발짝을 놓았다. 하지만 그 차는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해 질주하였고, 나는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 (차에 치이는)인 것같아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내가 중앙선을 넘어 피해서있는 찰라 그제서야 차가 "끼이익"하고 급제동을 하였다. 나는 분명히 운전자가 정상 자세로 운전하는 것을 보았고 (그가 딴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짧은 순간 공포감으로 머리가 쭈삣 섰었다. 황망해 하는 나에게 그 운전자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행위를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라 분노가 치민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놀래켜야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 몇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한국에서 관찰한 그 사람들은 실수로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어떤 사람은 일단 속도를 줄였다가 좌우를 살펴본 다음에 지나치기도 한다. 그나마 좀 나아보이지만 모두 의도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물론 미국이든 일본이든 사람이 운전하는 한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나 자신도 낯선 도시에서 길을 헤매느라 정신이 팔린 나머지 빨간불을 지나친 적이 있다. 빨간불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지나친 뒤였다. 얼마나 황망해하고 등골이 써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의

안철수의 말법과 이낙연의 말법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고 나서 "국민의당이 지금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호남 민심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안대표가 "정치자살"을 했다거나 "바보선언"을 했다거나 자살골을 넣고 뒷풀이까지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노회찬씨는 멀쩡한 학생을 퇴학시켜놓고 학생은 괜찮은데 그 아버지가 문제라고 둘런댄다고 했고, 한반도에서 결정권의 쥐고 있다는 김정은의 논리와 같다고 깎아내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의 대정부질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차분하고 재치있게 대응하여 눈길을 끌었다. KBS나 MBC에서 불공정하게 보도한 것을 보았냐는 의도된 질문에 "잘 안봅니다"라고 답한다. 제왕적 대통령 체제에서 삼권분립이 무의미하다는 호통에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국회에서 부결처리한 것을 체험했으니 삼권분립이 살아있다고 답했다. "미국에게는 척지고, 중국에게는 발길차이고, 북한에게는 무시당하는" 처지가 된 "전략적 왕따"가 안보전략이냐는 기세등등한 질문에 태연히 "김성태의원이 한국대통령보다 일본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원래는 야당 의원들의 무대가 되었어야 할 대정부질의가 이낙연의 독무대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관련된 사실과 엇갈린 주장이 틀린지 맞는지를 제쳐두고 두 사람의 말법만을 듣고 있다보면 찹찹한 생각이 든다. 국민들이 저런 꼴을 보려고 투표를 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인사청문회장이나 본회의장에서 나왔다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발언의 수준이 국민 평균을 넘는 경우가 열에 하나나 될까? 소위 "말빨"이 좋아서 "장소팔 고춘자"처럼 술술술 말을 쏟아내는 자는 많지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니 이낙연의 말법에 희희

"고객님, 백만원이 입금되셨습니다"

오랜 만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를 사용하는 즐거움이 새로왔다. 한국어만의 독특한 느낌을 살리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쏟아낸다는 느낌은 시원하게 배설을 끝낸 그런 뿌듯함이다. 모국어라는 것이 주는 이런 편안함을 참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한국 생활에 차츰 적응하면서 못마땅한 말과 글이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나들목"같이 맘에 쏙드는 단어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참으로 못마땅하다. 시도 때도 없이 영어를 뒤범벅하여 쏟아내는 말과 글이 귀와 눈을 거슬리게 한다. 멀쩡한 한국어를 두고 꼭 그리 말하고 써야 하는지 몹시도 불편하다. 한국어를 사용하면 수준이 낮고 영어를 사용하면 수준이 높다는 맹신이 있는 것같다. 하물며 엉터리인 줄도 모르고 "콩글리쉬"를 입에 달고 사는 "영어중독증 환자"임에랴... 아무렇게나 섞어 만든 국적불명 단어나, 제멋대로 늘이고 줄인 표현이나(예컨대, "오나전" "까도남"),  그 자체가 천박한 표현도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같다. 무엇보다도 가장 거슬리는 것은 사물을 존대하는 말법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못된 것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들을 때마다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은 입에 넣은 것처럼 불쾌하고 역겹다. 처음 들을 때는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멍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짜증이 난다. 한국에 와서 얼마 안되어 은행에 갔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은행계정을 확인하고 새로 통장을 만들고 입금을 하기 위해서였다. 창구에서 일을 하던 여직원이 통장과 신분증을 건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객님, 백만원이 입금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어색했는지 나는 "예? 뭐라고요?"라고 되물었다. 백만원이 입금되셨다는 말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럼 나는 뭐란 말인가... 나는

스킨쉽"이 영어사전에 안나온다고요?

드라마나 연예인이 나와 말장난을 하는 방송을 보면 수시로 영어단어가 튀어나온다. 어떤 이는 토씨만 빼고 영어단어(영어 표현이 아니라)를 쏟아낸다. 자신의 지식수준과 전문성이 이 정도라고 뽐내고픈 속내가 드러난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돋보인다고 믿는 강박감에 차라리 측은함과 애처로움을 느낀다. 또한 그런 천박한 세태를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방송을 지켜보면 절반은 그런 대로 맞는 영어단어를 쓰는 것같은데, 나머지 절반은 뜻이나 용례나 발음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다. 물론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방송에서도 불가능하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뉴스나 드라마에서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서 외국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수준은 기대 이하다. 제대로 된 영어표현도 아니고 그냥 한국어 문법에 영어단어를 적당히 (뜻을 제대로 모른 채) 박아넣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콩글리쉬 (Konglish)를 남발하는 모습은 아연실색이다. 참담할 따름이다. 가장 황당한 영어단어는 스킨쉽(skinship)이다. 어느 방송번호를 누르든 간에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다. 부모와 아기가 친근한 접촉을 통해 서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주로 남녀 사이의 신체접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같다. "스킨쉽이 있었나요?" "스킨쉽 전략" 등으로 사용된다.   스킨쉽이 황당한 이유는 그 단어가 영어단어처럼 생겼지만 영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영어단어가 아니라는 소리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Physical_intimacy)에서 "physical intimacy"를 설명하다가 일본에서 기원했다는 스킨쉽을 소개한다. スキンシップ (스킨쉬쁘)라고 한댄다. 행여 kinship을 착각하여 이리 황당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Urban diction

몹쓸 무리들의 몹쓸 말공작

박근혜 최순실 사태로 나라 안팎이 뒤숭숭하다.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사사로운 인연에게 사실상 권능을 넘겨주었으니 말이다. 헌법이고 뭐고 엽기(獵奇) 그 자체다. “바지대통령” 아래서 정부관료제와 공직자는 그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대통령이었던 최순실씨가 정치, 공직, 경제, 사회, 교육, 체육,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을 휘젓고 다니면서 사리사욕을 취했으니 황당하고, 어이없고, 부애나고, 수치스럽다. 하물며 그 민간인이 멀쩡한 대학교육도 받지 못했음에도 엉터리 석사와 박사학위를 달고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음에랴…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사태수습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온다. 탈당, 하야, 사퇴, 탄핵에서부터 책임총리, 거국중립내각, 2선후퇴, 영수회담 등 분분하다.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내치와 외치를 구분하네 마네 다투고 있다. 헌법 71조를 어떻게 적용할지, 어떻게 해석할지 의견이 다르다.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은 야당이 자꾸 말을 바꾼다고 비난한다. 여당이 야당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면, 한발 더 물러서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투정한다. 군통수권과 게엄권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말한다.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답은 뻔한데 쓸데없는 말장난을 한다며 혀를 끌끌 찬다. 근본 질문 두개: 책임과 능력 가만이 생각해 보면 청와대, 여당, 야당이 다투는 논리가 간단하다.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1) 박근혜 최순실 사태가 참을만한 것인가와 (2) 박근혜씨가 국정을 이끌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가이다. 시민과 여야(일부 “친박”을 제외하고)는 참을 만한 범위를 넘은 엽기라고 본다. 지지율 5퍼센트와 오늘 집회에 모인 백만명이면 충분한 증거가 된다. 또한 초우주적인 “바지대통령”에게 희망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대통령과 내각이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니 조기 대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공백을 메꾼답시고 사고치지 말고 가만히 반성하면서 처분을 기다려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