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인데도 지나가는 "막가는 차"

한국사회와 다른 나라 사회를 종종 비교하게 된다.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쁜 것도 있다. 다른 나라와 다른 나쁜 것을 발견할 때면 부끄러움을 느낄 뿐더러 가끔씩은 참담해질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차를 목격할 때다. 말 그대로 "막가는 차"들이다.

얼마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머리가 쭈삣 뻗치는 경험을 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다가 파란불로 바뀌어 (운전자에게는 빨간불)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멀리 오른쪽에서 승용차가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당연히 멈추리라고 생각하고 횡단보도 절반을 넘어서 두어 발짝을 놓았다. 하지만 그 차는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해 질주하였고, 나는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 (차에 치이는)인 것같아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내가 중앙선을 넘어 피해서있는 찰라 그제서야 차가 "끼이익"하고 급제동을 하였다. 나는 분명히 운전자가 정상 자세로 운전하는 것을 보았고 (그가 딴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짧은 순간 공포감으로 머리가 쭈삣 섰었다. 황망해 하는 나에게 그 운전자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행위를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라 분노가 치민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놀래켜야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몇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한국에서 관찰한 그 사람들은 실수로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어떤 사람은 일단 속도를 줄였다가 좌우를 살펴본 다음에 지나치기도 한다. 그나마 좀 나아보이지만 모두 의도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물론 미국이든 일본이든 사람이 운전하는 한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나 자신도 낯선 도시에서 길을 헤매느라 정신이 팔린 나머지 빨간불을 지나친 적이 있다. 빨간불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지나친 뒤였다. 얼마나 황망해하고 등골이 써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빨간불을 무시하는 이런 행위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째,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는 그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승용차는 물론이고, 택시, 트럭, 승합차도 포함된다.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이 타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도 빨간불을 지나치는 것을 보았다. 빨간불을 무시하는 것이 어떤 특정 차종이나 부류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세째, 그러면 얼마나 많은 차가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일까? 물론 아직은 대다수 차량이 빨간불을 준수한다. 안그랬으면 한국의 인구는 차량사고로 큰 폭으로 감소했을 것이다. 관찰한 바에 따르면 9할 8푼 정도는 빨간불을 준수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머지 2푼 (2%) 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문제다. 어딜 좀 가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번 빨간불을 무시하는 차를 관찰하곤 한다.

반면에 미국이나 일본에서 빨간불을 무시하고 다니는 차를 구경하기 어렵다. 나는 일본에서 딱 한번 관찰한 것같은데, 그것도 노란불이 거의 끝날 무렵인데 서지 않고 달려서 길을 건너기 시작하기도 전에 빨간불로 바뀐 경우이다. 이에 비해 2푼이라는 경험치는 높아도 한참 높다. 한국에서 차를 운전해서 다니거나 길을 건너기가 무서워진다. 언제 어디서 차에 치어 죽을지 모르니 말이다.  

네째, 왜 빨간불을 지켜야 하는지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안지키면 너도 나도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기본적인 내용을 약속으로 정하여 지켜야만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제맘대로 역주행을 하고, 빨간불을 지나치고, 길이 아닌 곳으로 질주를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차가 다니지 못하는 산골로 피난을 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빨간불이 갖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실천하지 않는데 있다.

미국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 빨간불은 물론이려니와 "일단정지" 표시에서 차를 완전히 정지시키지 않으면 볼것없이 탈락이다 (그자리에서 바로 탈락이라고 말하고 시험을 끝낸다). 그만큼 시험단계에서부터 기본을 강조한다. 일본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멈춰야 할 때,  일정한 거리 (30센치미터인가?) 앞에서 서야만 한다. 사람목숨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그 기본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게 도로에 폐쇄회로TV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도 빨간불을 무시하는 차가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과속을 단속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국처럼 폐쇄회로TV로 운전자를 윽박지르는 그런 저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대신 일단 걸리면 피를 보게 된다. 벌금도 한국에 비해 최소 서너배 이상이다 (기타 벌점 이런 것은 별개고). 과속 한번에 30만원 정도 벌금을 냈다고 투덜거리는 얘기도 들었다.  

요즘도 빨간불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차를 볼 때마다 섬칫해진다. 나는 생각한다. 왜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일까?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자기도 질주하는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많은 규칙위반자가 버젓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 많은 폐쇄회로TV는 다 뭐란 말인가? 그 많은 경찰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빨간불같은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회는 야만이다. 누구도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니 어찌 문명을 따지겠는가. 빨간불을 의도적으로 상습적으로 무시하는 자들은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빨간불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철저히 따지고 위반자에게 책임을 뼈저리게 물어야 한다. 선량한 시민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을 요구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201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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