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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무리들의 몹쓸 말공작

박근혜 최순실 사태로 나라 안팎이 뒤숭숭하다.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사사로운 인연에게 사실상 권능을 넘겨주었으니 말이다. 헌법이고 뭐고 엽기(獵奇) 그 자체다. “바지대통령” 아래서 정부관료제와 공직자는 그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대통령이었던 최순실씨가 정치, 공직, 경제, 사회, 교육, 체육,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을 휘젓고 다니면서 사리사욕을 취했으니 황당하고, 어이없고, 부애나고, 수치스럽다. 하물며 그 민간인이 멀쩡한 대학교육도 받지 못했음에도 엉터리 석사와 박사학위를 달고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음에랴…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사태수습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온다. 탈당, 하야, 사퇴, 탄핵에서부터 책임총리, 거국중립내각, 2선후퇴, 영수회담 등 분분하다.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내치와 외치를 구분하네 마네 다투고 있다. 헌법 71조를 어떻게 적용할지, 어떻게 해석할지 의견이 다르다.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은 야당이 자꾸 말을 바꾼다고 비난한다. 여당이 야당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면, 한발 더 물러서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투정한다. 군통수권과 게엄권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말한다.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답은 뻔한데 쓸데없는 말장난을 한다며 혀를 끌끌 찬다. 근본 질문 두개: 책임과 능력 가만이 생각해 보면 청와대, 여당, 야당이 다투는 논리가 간단하다.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1) 박근혜 최순실 사태가 참을만한 것인가와 (2) 박근혜씨가 국정을 이끌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가이다. 시민과 여야(일부 “친박”을 제외하고)는 참을 만한 범위를 넘은 엽기라고 본다. 지지율 5퍼센트와 오늘 집회에 모인 백만명이면 충분한 증거가 된다. 또한 초우주적인 “바지대통령”에게 희망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대통령과 내각이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니 조기 대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공백을 메꾼답시고 사고치지 말고 가만히 반성하면서 처분을 기다려야 한...

토론을 망치는 말법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화법을 부러워할 때가 종종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대선후보끼리 불꽃튀는 토론을 벌이거나 영국에서 총리와 정치인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번갈아 가며 논쟁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서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한다. 효과적인 언변을 통하여 논거를 가지고 상대방의 지성과 감성에 호소한다.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가 아닌 그가 한 말이 얼마나 합당한지를 따지는 방법이다. 지식뿐만 아니라 품격이 필요하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토론장에 나온 "검투사"는 자신의 주장이 어떠한 것인지 그 논거는 얼마나 타당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 주장의 허와 실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용맹스러움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에 나아가 초전박살이 나기 십상이다. 말을 달려 창과 방패로 판가름을 내는 박진감넘치는 승부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무장으로서 명예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무릎꿇는 멋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용감하고 멋있는 “토론 검투사”를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있게 나를 밝히고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진정한 검투사가 드물다. 토론회가 열리기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대화만 열려 있으면 무얼 하는가.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사실과 증거에 근거한 토론이 아닌 밑도 끝도 없는 자기주장이 있을 뿐이다. 설득과 설득됨이 없으니 그야말로 “백날토론”일 뿐이다. 검투장이 있고 구경꾼이 있다 한들 좋은 검투사가 없으니 무슨 재미가 있단 말인가. 각종 토론회를 보면서 좋은 검투사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대통령선거 후보자 1차 토론회를 두고 말이 많다. 누가 잘했니 못했니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정희의 발언을 놓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이정희는 그런 돌팔매를 맞을 만큼 잘못한 것일까? 이정희의 발언...

윤평중의 "가짜 토론"이 궤변이다.

윤평중교수가 쓴 " ‘가짜토론’은 민주주의의 敵이다"라는 글을 우연히 읽고 탄식을 한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궤변을 비판하는 글이 바로 궤변이니 하는 말이다. “토론의 기본 원칙인 정직성과 상호 신뢰성”을 언급하고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를 요구했지만 정작 자신의 글에 담은 설명은 정직성과 사실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윤교수는 이번 토론이 “기계적 공정성에 너무 신경을 쓴 탓에 토론의 긴장도가 떨어지고 정책 검증이 부실해졌다는 게 객관적 총평(總評)이므로 토론 방식을 바꾸는 게 적절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선방위가 정한 토론 방식과 민주정치의 큰 원칙을 후보자들이 1차 TV 토론에서 충실히 지켰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한 대로 진행된 “토론방식”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해놓고 그 토론방식과 큰 원칙 (무슨 원칙인지는 모르겠지만)을 지켰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황당하지 않은가. 도대체 이런 궤변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토론방식이 적절하지 않다면 고치라고 할 일이고 엉터리 토론방식으로 생고생을 한 토론자들에게는 과도한 책임을 거두는 것이 상식이다. 어쩌면 엉터리 토론방식을 벗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치 않고 토론방식과 원칙은 적절했는데 토론자들이 무시하고 제멋대로 했다면 토론자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윤교수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정희 발언은 충분히 사실에 근거했다 윤교수는 “정직성과 상호 신뢰성”을 말했고 “사실과 증거”를 강조했다. 내 보기에는 정직면에서 보면 문재인이 제일 나았던 것같고 (참여정부 실정을 겸허하게 인정했으니), 사실과 증거 면에서는 이정희가 제일 나았다. 말하는 태도와 말법을 빼고 이정희가 말한 내용 중에 사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다음 문장에서 찾아보라.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거다. 한국이름 박정희. 군사쿠데...

나쁜 정치인 고르는 법

요즘 서울시장 선거로 시끄럽다 . 선거가 시민들의 뜻을 모으는 잔치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 비열하게 상대방을 헐뜯고 유권자들을 호도하는 고약한 짓거리가 난장판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지금이 21 세기인데 아직도 해방직후 난장판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아닌가 . 이러한 혐오스러움은 자연스레 선거 무관심으로 이끈다 . 하지만 이런 무관심을 노리는 자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꼬라지가 괘씸하다 . 시민들의 선택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니 어찌하랴 . 접었던 마음을 고쳐먹는다 . 이 글은 길거리나 시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 특별히 종합부동산세 ( 종부세 ) 를 걱정하며 사는 달동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다 . 사상이 의심스럽다거나 “ 빨갱이 ” 라 하면 무조건 손가락질을 하는 , 부자가 되게 해준다거나 “ 뉴타운 ” 이라고 하면 무조건 쌍수들고 환영하는 , 그러나 미워하기 어려운 동네 주민들에 하고 싶은 말이다 .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덜 고단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 돈이 많은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야 하며 어떤 일을 해도 방해받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거나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접기 바란다 . 서로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니 쓸데없는 논란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자 . 1. 나쁜 정치 : “ 최악의 상태 ” 유감스럽게 지금 선거판은 나쁜 정치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 이문영의 < 논어 맹자와 행정학 > ( 나남출판 , 1996) 에서 그리는 “ 최악의 상태 ” 에 가깝다 (368-376 쪽 ). 악한 정부는 1 단계에서 바른 말을 못하게 한다 . 불법집회 , 불법선거라는 딱지를 붙여 족쇄를 채우려 든다 . 틈만 나면 촛불시위를 헐뜯고 , 인터넷에다 글을 적을 때 실명을 쓰라고 하고 , 트위터에 글쓰는 것을 감시하겠다고 한다 . 미국기준에서 보...

자위권(自衛權), 자위권(自慰權)?

신임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취임식에서 “[북한이] 다시 도발을 감행해 온다면 즉각적이고 강대한 대응으로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위권을 발동하여 전투기로 폭격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이 자위권을 가지고 있다고 동의했고, 이어 일본 총리는 유사시 한반도에 자위대(自衛隊)를 파견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참으로 이러한 언사들이 걱정스럽다. 이 모든 것이 한심한 한국 정부가 자초한 것이어서 부끄럽고 민망할 뿐이다. 한심한 자위권(自衛權) 타령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자위권(自衛權)을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한 급박한 침해에 대하여 실력으로써 방위할 수 있는 국가의 기본적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멀쩡한 독립국가라면 당연히 가지는 권리이다. 하지만 생뚱맞게 자위권을 발동한다느니, 남의 나라에게 그들이 자위권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느니, 남의 나라 일에 자기 나라 군대를 파견한다느니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없다. 그만큼 한국이 사실상 자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소리인가? (자위권을 멀쩡하게 행사할 수 있으면 굳이 자위권을 들먹이지 않는 법이다) 미국이 한국의 자위권(사실상 군통수권)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고, 일본도 이 참에 자위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인가? 그렇다면 중국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북한에 중국 군대가 주둔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러시아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 100여년 전으로 돌아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이 땅에서 다시 치르려는가? 뭐 시즌 II쯤 되는가? 한국이 자위권이 있다고 미국이 인정해 주니 감격스럽고 눈물나게 고마운가? 과연 돈독한 한미동맹이라고 자랑스레 내세울 것인가? 그래서 일점일획도 못바꾼다는 FTA협정문을 은혜로운 혈맹을 위해 “원하시는 대로” 고쳐주었는가? 참으로 친절한 MB氏아닌가. 또 일본은 자위대를 보내준다니 얼마나 감동스러운가? 일왕에게 바짝 엎드려 큰절이라도 올릴 참인가? 미국도 일본도 이렇게 저렇게 “자위”를 해준다니 마...

참여연대의 서한과 "애국단체"의 가스통

천안함사건 조사에 의문점과 문제점이 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정권, 그 정권이 "낙하산"으로 틀어쥐고 있는 언론, 자칭 보수라는 "일부 철없는 애국자들"이 참여연대를 난타하고 있다. 선거에 참패하여 울고 싶은 마당에 참여연대가 때마침 뺨을 때린 셈이다. 참여연대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 공무집행을 방해했는지 따져본다는 소리도 들린다. 대다수 백성들은 그저 침묵하고 있다. 나이로 무장한 머리 희끗희끗한 "애국자들"이 나섰고 역시나 가스통으로 무장한 "군복들"이 출동을 했다. 이적행위라고 했고, 나라 망신이라 비난했다. 더 나아가 가스통과 시너로 위협하면서 "xxx을 따버리겠다"고 했고, 폭파해버리겠다고 했고, 불태워버리겠다고 했다(오마이뉴스 6.17, 박상규; 한겨레신문 6.17, 황춘화). 씌인 내용도, 색깔과 디자인도, 입에서 나온 말도 모두 섬찟하다. 게다가 하는 행동은 차마 믿기질 않을만큼 무모하고 과격하다. 일부 "자칭 애국자들"이 기회주의 언론과 반공정권을 등에 업고 난장판을 피울 때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감는다. 과연 언론에 비춰지는 대로 "애국자들"의 주장과 행동은 전체 백성을 대표하고 있단 말인가. 왜곡되고 과장된 민심아닌 민심을 어찌한단 말인가. 참여연대를 위해 변명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일부 철없는 애국자들"을 비난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렇다고 양비론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성과 상식에 의한 토론이 불가능하도록 이끄는 "검은 세력"(dark side)을 말하고 싶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그러니 너를 반드시 개종시켜야 하고 응징해야 한다는 집착으로 생겨나는 참사를 말하고 싶다. 한번 밀리면 끝장이다와 같은 맹목적 힘겨루기가 얼마나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피폐(疲斃)시키는지 말하고 싶다.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