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사건 민군합동조사단의 과학성


천안함이 침몰하여 50여명의 병사와 하사관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민군합동조사단이 조사를 실시하였고, 5월 20일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하여 침몰했다고 발표하였다. 여당에서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북한에게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있고,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조사내용을 검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북한은 날조된 사건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정부에 동조하는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의사표시를 유보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야당이 과학을 안믿고 북한에 동조한다고 비난하며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반면 오랜 만에 대중 앞에 선 김용옥 선생은 조사단의 발표는 0.0001%도 설득이 안된다고 일갈하였다. 과연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와 그 결론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나는 어뢰가 어떤 것인지, 군함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뢰에 맞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것은 알지 못한다. 어뢰 사진을 봐도 뭐가 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어떤 사건을 둘러싼 여러가지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싶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이성에 따라 진위를 밝히는 과정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말과는 다르게 객관성도, 공정성도, 과학성도 확보하지 못한 논의 과정이라고 본다. 조사단의 결과를 믿지 않거나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유언비어를 유포한 죄를 묻겠다고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김용옥 선생이 고소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런 것이 멀쩡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1. "과학적 조사"라는 허구: 과학이 아니라 시나리오다.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가 과학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과학을 믿지 않느냐고 했다. 국방부장관이 국민의 7할밖에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도대체 과학은 무엇이며 왜 사람들은 과학(그 조사가 과학의 산물이라면)을 믿지 않는 것일까?

거창하게 토마스 쿤이나 칼 포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식차원에서 과학을 말할 수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한 "과학"은 일반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뢰가 배밑 3미터에서 폭발하면 뭐가 어찌되고 어찌되는지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누가 어떻게 조사를 하여 얼마나 그럴듯한 결론을 내리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전자가 사실로서 과학이라면 후자는 절차로서 과학을 말한다. 조사단은 시뮬레이션이라는 말까지 동원하여 "과학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사실로서 과학(정말 사실이라면)을 말했을 뿐이다. 일반 백성들이 알고 싶어하는 절치로서 과학에 대해 답하지 못한 것이다.

조사발표에 대하여 야당과 시민사회 (예컨대, 참여연대)에서 여러가지 의문점을 제시하였다. 물기둥이 있었는지, 사상당한 병사들의 상태와 합치하는지, 절단면이 어떠한지 등에 관하여 지적하였다. 그런 자세한 내용에 대해 어느 쪽이 맞는지 나는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일반 백성들의 눈에서 볼 때 의심을 해소하지 못하는 구석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사단의 발표와 결론이 그 지위를 따진다면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성이 있다고 강변해도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해도 그 지위는 "...을 것이다"이다. 김용옥 선생은 "가설"이라고 표현을 하였다. "암초에 부딫혀 가라앉았을 것이다," "기뢰가 터져 가라앉았을 것이다," "한국군이나 미군의 실수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한국군이나 미군이 일부러 가라앉혔을 것이다," "중국군이나 일본군이 와서 가라앉혔을 것이다" 등 무수한 시나리오나 "설" 중 하나일 뿐이다. 어쩌면 진리값을 보면 "외계인이 와서 장난치다 천안암을 부러뜨렸을 것이다"와 "북한군이 어뢰를 쏴서 가라앉았을 것이다"는 차이가 없는 셈이다.

발표내용은 추정으로 되어 있다.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해서 그러했다가 아니다. 시간과 장소와 방법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결과를 놓고 거꾸로 추적한 것이다. 자 배가 침몰했다. 이렇게 침몰하려면 폭발이 있었을 것이다. 그 폭발은 (천안함을 침몰시키려면) 어느 규모로 어떤 성격으로 일어났어야 한다. 그런 폭약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은 북한일 것이다. "어뢰 건더기"와 어뢰문서를 보여주며 이 어뢰는 북한이 사용한 것이다. 북한의 소행이라면 잠수함이 왔을 것이고, 작은 잠수함에서 발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해로 우회하여 왔을 것이다...

말도 많고 증거품들도 많고 그렇지만 사실은 "시나리오"를 그럴듯하게 작성한 것이다. 물론 이 시나리오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사실을 특정하여 기술한 문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설"이라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치 시뮬레이션이 과학성을 보증하는 것인양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여러가지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특정해줄 수 없다. 즉,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북한군이 쏴서 천안함이 침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그런 개연성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결국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내용은 과학이라기보다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나 "설"을 제시한 것 뿐이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부터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으니 군관계자 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 "그들만의 과학"일는지는 몰라도 백성들에게 그저 "달나라 얘기"같을 뿐이다. "가설"이든 "설"이든 그것을 가지고 누구를 특정하여 책임을 묻거나 포상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여 말하고 사상당한 병사들이 포상을 받고 조사단에게 훈장을 수여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왜 그리 서두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2. 왜 하필 믿느냐를 묻는가?: 객관성과 공정성이 빈약하다

조사단의 발표를 두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묻는다. 왜 과학을 믿지 않고 유언비어에 현혹되느냐고 말한다. 정부가 조사단을 가동하여 과학적으로 조사하였는데, 왜 안믿는가라며 어이없어해 하고 있다. 조사발표와 다른 얘기를 하거나 다른 가설을 말하면 반정부 행위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과학"이란 권위를 빌려야만 하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정부가 발표하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어느 법에 그리 나와있는가? 정부가 발표를 하면 백성들은 각자의 경험과 상식에 따라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니 납득할 수 있는가와 그렇지 않은가이다. 굳이 답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다. 왜 납득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또 왜 하필 믿어야 하는가? 본인이 신을 믿는다 하여 믿지 않는자들을 악마로 보는 것처럼 반대자들을 저주하고 처단하려 하는가.

사실로서 과학에 몰입하다 보니 과정으로서 과학의 논리를 망각한 결과다. 발표한 내용이 항목별로 사실이라 해도 그 과정은 과학이 요구하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고 있다. 많은 백성들이 그 과학을 원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독점한 정보를 가지고 사실로서 과학만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리고 믿느냐를 묻고 있다. 무슨 교회당에 나온 것도 아니고 왜 믿어야 하는가? 어이없는 일이다. 얼마나 객관성있게 공정하게 조사를 해서 그 결과가 그럴듯한지를 알고 싶은데, 뚱딴지같이 "믿슙니까?"를 물으니 말이다. "잘 들리세요?"라고 물으니까 "잘 안보여요"라고 답하는 "사오정 놀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로 치면 군당국은 여러번 사실관계를 수정했다. 예컨대,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에게 보고된 시간이 수정되었다. TOD 동영상 (이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이 없다고 했다가 있다고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물기둥이 못봤다고 하다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정보가 군당국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군당국이 사실관계를 여러번 바꾼 것은 사실이다. 일반 백성들이 조사결과에 동의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민군합동조사단이라지만 군당국이 조사를 지배하였다. 야당이 추천했다는 조사위원은 "왕따"를 당하였고 지금은 조사를 받는 처지에 몰렸다 (그 사람의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군당국은 몇년 전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런 위풍당당한 군이 아니라 덩치 큰 군함이 언제 어떻게 가라앉았는지도 모르는, 대통령과 장관에게 40분 50분이 지난 후에 보고를 하는,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것도 증거품이라는 어뢰를 건지는 것도 모두 어부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허풍당당한 군"이다. 북한의 공격에 침몰한 것이라면 완벽하게 패배한 패잔병들이다. 그런 패잔병들이 주도하여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를 조사하여 발표한 것이다. 어쩌면 조사대상이 되어야 할 자들이다. 과연 객관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보독점은 객관성과 공정성에 큰 흠집을 남겼다. 사건 당사자들과 접촉을 차단하였다. 뭐 병원복을 입고 증언을 하긴 했으나  군생활을 한 사람이면 다 "감"을 잡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라앉은 배를 끌어올렸는데 그물로 싸고 가까이 접근할 수 없도록 했다. 조사발표가 끝나고 나서야 자랑스레 (참패를 한 증거를 그리 떳떳하게 공개를 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수없이 사과를하고 허리를 굽혀 용서를 구했어도 시원찮았을텐데...) 공개를 했다. 조사단이 그들의 결론에 맞추어 절단면을 조작했다 해도 할말없는 대목이다. 군수뇌부가 머리가 나쁜 것인지 너무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보면 "자살골"이다.

발표일정도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두달동안 무엇을 하고 선거를 코앞에 두고 발표를 했단 말인가. 시뮬레이션이 끝나지도 않았다는데 왜 서두는가. 그것도 대통령의 담화문이니 미국무부장관 방문 등 일정을 잘 맞추었던 것도 공정성을 훼손시키기에 충분하다. 우연이라 강변할 수도 있지만 너무도 기가막힌 우연이 많은 것이 탈이다. 하필 마지막 날에 어부가 "어뢰 건더기"를 건지는 우연, 사망자 중에 장교가 한명도 없는 우연, 결과를 발표하는데 선거가 코앞인 우연, 2호, 3호도 아닌 하필 "1번"이 씌여진 우연, 노랑색, 빨강색도 많은 데 하필 파란색으로 씌여진 우연, 우연, 우연... 일반 백성들이 보기에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출생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의 우연보다도 더 기가막힌 우연이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이 걸릴 확률보다도 더 작아보이는 이 우연을 어찌해야 하나.

이런 조사과정으로 미루어 보면 조사결과가 설령 사실이라 해도 선듯 납득하기 어렵다.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결과)로서 과학이 진실이라 해도 과정으로서 과학은 전혀 터무니없다는 데 문제 핵심이 있다. 이 뼈아픈 진실을 외면하고 왜 믿지 않는냐고 한다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백성들이 납득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부족함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 정 묻고 싶다면, "이 시나리오, 정말 그럴듯하지 않습니까"라며 의견을 물어야 했다. 믿고 안믿는지는 이 사안에 관해서는 애초부터 질문이 아니다. 

3.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나도 가설을 말할 수 있다.

칼 포퍼는 과학성이 있는 언명은 반증가능해야(falsifiable) 한다고 했다. 어떤 언명이 틀렸는지를 증명할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니라는 얘기다. 예컨대, "신이 존재한다"는 과학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틀렸는지를 증명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엇이 신인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등 수없는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언명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일 뿐이다.

조사단의 발표내용은 가설이지만 현재 반증가능하지 않다. 누구의 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면 공격자가 자백하여 명백한 물증을 제시하지 않는 한, 군당국이 모든 정보를 책임있는 사람들에게 (예컨대, 일반 백성들이 아니라 야당이나 시민사회)에게 공개하여 검증하도록 하지 않는 한 반증할 방법은 없다. 400쪽이나 된다는 발표내용도 외국에게는 공개가 되는데 야당과 시민사회에는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증은 가능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 가설은 과학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외계인이 그랬을 것이다라는 설과 그 (검증가능하지 않은 가설이란) 지위로 따지면 별반 다르지 않다.

발표내용을 왜 믿지 않느냐는 불만은 이래서 터무니 없다. 애초부터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과학을 질문해야 하는데, 과학이라 해놓고 검증가능하지 않은 가설을 던져놓고 물으니 하는 소리다. 과학이 아닌 "신이 존재한다"와 같은 믿음을 물었으니 황당한 것이다. 발표내용과는 별개로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믿는다 그럴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반증가능한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아니라, 말하자면 "장로님"을 믿냐 안믿느냐이다. 더 나쁜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 "신이 존재한다"를 믿지 않는 불순한 악마로 몰아붙인다. 과학을 믿지 않는다고 선동하지만 사실은 불경스럽게 신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빨갱이 놀음"인 것이다. "파란 하늘을 좋아하느냐"를 물어놓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파란색(기호 1번)을 싫어하는 더러운 "빨갱이"이라면서 길길이 뛰는 것과 차이가 없다. 답한 사람들은 그저 어이없어 허허허 할 뿐이다.

발표내용과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위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반증하지 말라는 소리다. 눈과 귀를 닫고 조사단이 발표한 내용을 진리로 믿으라는 소리다. 그럴 양이면 뭐하러 시끌벅적하게 발표를 하고 난리를 피웠는가. ("재가 때렸어요..." 징징거리며 관심을 끌고 싶었다면, 엄마한테 가서 앙증맞게 떼를 쓸 일이다) 어느 언명에 대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리는 노력이 과학이다. 발표내용이 0.0001%도 설득되지 않는다는 김용옥 선생이 고소되는 일은 과학과 한참 거리가 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심판대에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과 믿음(종교)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의 난동일 뿐이다. 왜 천동설만 믿어야 하고 지동설을 말해서는 안되는가.

진리값으로 본다면 조사단의 발표내용은 다른 "설"에 비해 나은 것이 없다. (재미로 치자면 "인간어뢰"나 "물수제비 어뢰"가 훨씬 낫다.) 패잔병들이 정보를 독점하여 그들 나름의 논리로 작성한 시나리오일 뿐이다. 다른 사람이 검증하지 않는다면 과학성이 있는 추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검증을 받는 것이 발표내용의 진위를 판단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이 조사단을 파견하든, 중국이 사람을 보내든, 러시아가 전문가를 보내든 받아들여 당당하게 검증을 받는 것이 정상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실과 물증과 논리와 이성에 기초하여 논박한다면 그 결과는 과학이라는 지위를 획득할 것이다. 검증가능한 언명을 엄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따져본 결과라면 과학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사회가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open society)이다.

하지만 그런 것 없이 무조건 "믿어라, 안믿으면 간첩이다"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면 발표내용은 검증되지도 과학이라는 지위를 가질 수 없다. 검증을 거부하면서 다른 "가설"을 억누르고 반증노력을 탄압한다면 조사단의 발표내용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음모이론과 유언비어(아닐 수도 있지만)가 난무하는 것은 정상이다. 그 책임은 이견을 제시한 사람들이 아니라 검증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자들이 져야 한다. 그들이 바로 열린사회의 적 (the enemy of open society)이다. 햇빛을 싫어하고 어둠 속에서 공작을 일삼는 광신도들일 뿐이다.

4. 나도 사실을 알고 싶다.

나는 어찌하여 천안함이 가라앉았고 50여명이 되는 병사가 죽고 다쳤는지 알고 싶다. 참으로 비참한 일이며, 군역사로 치면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 많은 병사들이 자신들이 어찌 죽었는지도 모르고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계와 보고에 실패한 것을 비난하는 것보다 그 억울함을 더 비통하게 생각한다. 미군과 합동 훈련을 하는 중이었고 잠수함을 막기 위한 무기가 동원이 된 것이 사실인데 어찌하여 깊이 50미터도 안되는 바다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이런 우연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가.

유감스러운 것은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동의하기도 동의하지 않기도 뭐하다는 데 있다. 그저 터무니없고 납득할 수 없을 뿐이다. 객관성, 공정성, 과학성이 부족한 시나리오에 대하여 뭐라 말을 해야 하는가. 그냥 그런 의견이 있다는 것일 뿐이다. 그것도 경계와 보고에 실패한 패잔병들의 시각이 있을 뿐이다. 조사를 받아야 하는, 아니 지금 어처구니 없는 참패에 책임을 지고 군사법정에 서야 할 사람들이 당당하게 북한이 저지른 소행이라며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기가막힐 뿐이다. 패장이면 조용히 자숙하고 참형을 기다릴 일이지 왜 그리 말이 많은가!!!

안타까운 것은 과학을 해야 할 사안에 대하여 전혀 과학에 걸맞지 않은 방법으로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강요하는 야만스러움이다. 정보접근이 차단된 일반 백성은 그저 조사과정을 지켜봤을 뿐이고 그것이 절차와 과정으로서 과학에 걸맞는지를 판단할 뿐이다. 동의하든 않든 그것은 백성들의 자유이다. 누가 뭐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관련 사실에 기초하여 발표내용을 검증하려는 과정은 필수이다. 군당국은 책임있는 야당과 시민사회 대표들과 다른 나라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여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조사단의 발표내용의 진위를 가리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열린 사회의 적이 되지 않으려면 "닫힌 정보"를 열고 반증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북한이 저지른 소행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암초나 기뢰에 의해 천안함이 가라앉은 것이라면 지금 정부가 취하는 대북조치는 거의 자살행위이다. 선거때문에 급하게 그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과학이 아닌 자신들의 "믿음"이나 "바람"을 근거로 남북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더구나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자들(대통령도, 총리도, 여당대표도, 주요 장관들도 군미필인 국가안보회의?)이 "응분의 대가"니 "전쟁"을 운운한다는 것은 백성들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너나 잘하세요..."나 "너덜부터 총이나 똑바로 들고 전선에 나가라"라는 댓글이 달릴 것이다.

북한이 저지른 소행이라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전쟁으로 치닫는 무모한 조치는 해서는 안된다. 암초에 걸려 가라앉은 것이라면 지금까지 정보를 조작하고 거짓말을 해온 군수뇌부와 정치권은 그 무거운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아군의 실수라거나 의도한 실수라는 시나리오는 차마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이념이니 선거니 그런 것이 아닌 차분한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 돌아와 천안함 사건을 전말을 밝혔으면 한다. 그동안 선거철에 일어난 북한관련 사건들처럼 선거가 끝난 뒤 유야무야 두리뭉실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만의 과학" 혹은 자신의 믿음(희망사항)을 일반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 공정성, 과학성을 갖는 방법으로 철저히 조사하여 많은 백성들이 끄덕거릴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그것만이 어찌 죽는지도 모르게 죽어간 병사들의 억울함을 다소나마 풀어주는 길임을 믿는다.

201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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