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비열한 말법

정치인들의 비열한 말법: "...라는 의도가 아니라 ...라는 취지였다"

정치인이나 지도급 인사들이 실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대개는 “원래는 …려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취지가 잘못 전달되었다. 사실은 …라는 취지었다.”라고 말한다. “다행히” 천안함 사태가 바로 인천앞바다에서 일어났다라고 말해놓고 나서 문제가 생기니까 인천시민들의 “비통함”이 크다는 취지였다고 둘러댄다. 이러한 말법은 어떤 말을 던져놓고 분란이 생기면 그 말이 담고 있다고 강변하는 “진의”를 굳이 사후에 덧붙이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진의를 밝혀 오해를 푸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변명   자체가 진의를 감추고 “오해”를 공고히 하는 과정이다. 정직하지 못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말법이다. 

자 누군가가 공격대상(경쟁)에게 자신이 가진 감정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쏟아내었다고 하자. 온갖 욕설에 가까운 표현을 늘어놓았다고 하자. 그 발언이 문제가 되어 떠들썩하게 되면 수습하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잘못된 약속을 막 지키려는 여자”가 있다고 말해놓고 농담이었다고 어물쩍 넘어간다. 대개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유감이다. 사실은 …취지였다”로 둘러댄다. “의도”는 감춰지고 “취지”는 사후에 창작되는 이 말법에는 처음부터 진심과 배려는 없다. 따라서 듣는 사람도 피해당사자도 그 둘러댐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얼버무림을 한다 해도 어차피 원래 그러려는 의도가 있음을 본능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구차한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기보다는 상대방이 “정말 저 사람이 잘못을 반성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말할 것이다. 실언이었음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것이다.  “…로 상처를 받았다면 유감스럽다”며 입발린 소리로 상대방을 화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말로는 사과지만 사실은 재차 공격을 해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상대방을 두번 죽이겠다는 뜻이다. “확인사살”인 셈이다.  어떤 자들은 처음부터 공격할 목적으로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단지 실언으로 위장할 뿐이다. 이 말법이 비열하고 무책임한 까닭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법에서 “의도”와 “취지”가 너무나 다르고 터무니없다는 사실이다. 천안함 사건이 다행이다(의도)와 비통하다 (취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제 3자가 들어도 어이가 없다. 예컨대, 열심히 상대방을 “씹어”놓고 나중에 뜬금없이 “국가를 위해 잘해보자는 취지였다”고 얼버무렸다고 생각해 보라. 결국 크게 한방 때려놓고 후환이 두려우니까 “사과한다고 말할테니까(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복수하지 마라”는 뜻이다. 정말 유감스럽고 사과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복수하지 말도록 미리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피해자가 뭐라 항변하면 곧바로 “그럼 나라를 망치자는 거냐” 혹은 “사과했잖아!”라며 또 한방 날릴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 말법은 실언으로 시작되었다 해도 갈등을 해소하고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언을 정직하게 실언으로 인정하지 않고 마치 원래부터 비난하는 의도가 없다며 잡아떼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과도 용서도 없는 “문자 그대로 해석”을 통한 말장난과 “말거래”가 있을 뿐이다. 좋은 취지(예컨대, 서로 잘 해보자는 취지)와는 전혀 별개로 악의로 가득찬 “의도”로 서로 상대방을 깎아내릴 릴 뿐이다. 폭력이 또다른 폭력을 부르듯이 비열한 의도는 또다른 비열한 의도를 낳을 뿐이다.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로 한방 먹이니까 “집안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강도로 돌변하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냐”로 응수한다. 곧바로 “강도싸움”으로 번지고 구경꾼들은 비아냥조로 “새해 강도 조심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진심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전투구泥田鬪狗만 있을 뿐이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될 까닭이 없다.

이러한 비열한 말법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더구나 사회지도층이라는 자들이 이러한 천박한 말법을 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비참하게 하며 화나게 한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해야하는 자들이 천박한 “말싸움”으로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머리끄댕이 잡고 벌이는 이전투구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짜증날 수밖에 없다. 점잖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가 하는 짓이 고작 유치한 “애들 말싸움”이나 “담장낙서질”이니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런 말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정치인과 지도층 인사들이 상당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천박함과 비열함을 비난하다가도 대의민주주의의 결함을 탓해본다. 그런 자들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냉엄하게 비판하고 심판해야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현실을 한탄한다. 백성들이 무지하고 미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도와 관습에 아직 헛점을 많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나라와 백성들의 품격을 한없이 떨어뜨리는 비열한 말법을 하루빨리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 말법으로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백성들이 잘 지켜보고 있다가 준엄하게 심판해야 할 것이다. 진심을 다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정직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사는 세상이 그리웁다.

2010.2.12 (수정: 201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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