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성 함께 쓰기”를 비웃다 1

한국사람들의 성명은 보통 석 자로 되어 있다. 물론 이름이 외자여서 성명이 두 자인 사람도 있고 이름을 세 자로 하여 성과 이름이 네 자인 사람도 있다. 성이 두 자이고 이름이 외자여서 성명이 석 자인 사람도 있고 성과 이름 모두 두 자인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성은 고정되어 있다. 물론 전통에 따라 부계 성씨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가변 성을 쓰는 사람들이 가끔씩 보인다. 아버지와 자식의 성이 다른 것이다. 처음에는 생소하여 가벼운 호기심으로 보았는데, 그들이 하는 언행을 지켜보면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소위 진보나 여성주의자들이 1997년 3월 벌어진 한국여성대회에서 “호주제 폐지”와 함께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http://root.or.kr/root/root-report-magazinegv.htm). 이를테면, 성이 이李인 아버지와 성이 송宋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성은 “이李”가 아니라 “이송李宋”인 것이다.

“호주”라는 말이 일제시대 유산이고 보면 “호주제 폐지” 주장은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부모 성 함께 쓰기”는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잘 봐줘야 철딱서니 없는 자들의 영웅심리이다. 남녀 평등을 실현하고 심각한 성비불균형을 해소하자는 그들의 주장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부모 성 함께 쓰기”로 그런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유치하기 짝없는 발상이다. 정말 성씨를 병기해서 문제가 해소된다면 나 스스로 참으로 기가막힌 방책을 고안했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겠다.

얼마 전 어린 세대의 남녀성비가 정상화되거나 역전되기도 한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운동때문이 아니라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다. 행여나 부모성씨를 병기해서 남아선호가 없어졌다고 강변한다면 지구촌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그런 효과만점인 "명품운동"이 있다면 남녀차별과 성비불균형으로 고통받는 나라에 값싸게 수출하여 "그들"의 인류애와 박애정신을 만방에 떨칠 일이다. 한마디로 극단에 이른 여성주의에 집착한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어거지라고 생각한다.

“부모 성 함께 쓰기”는 설익은 생각으로 성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일이다. 실익도 없이 오래된 관습을 흔들고 쓸데없이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일이다. 부모 성을 병기하는 일이 현대 사회에서 남녀평등이나 남아선호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아이가 배아프다고 할 때 배꼽에 반창고 붙이는 짓과 진배없는 일이다. 어찌되든 자기만 만족하고 편하고 보자는 이기심과 무책임이다.

1. 성씨와 이름이란 무엇인가?


사물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물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언어를 가진 사람의 일이다. 사람에게 성명을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이름이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인격을 고려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이름이라면 다른 이름과 구별되어야 하며, 길이가 짧아야 하며, 발음상 부르기 좋아야 하며, 가능하다면 좋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 흔해빠진 이름이거나, “김수한무...” 식으로 긴 이름이거나,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특히 여자이름)이거나, 개똥이 말똥이와 같은 무책임한 이름은 좋지 않다.

성은 인간사회에서 혈족을 따지는 개념이다. 예컨대, “김해 김”이면 김이 성이고, 씨가 김해이다. 씨는 우리로 치면 본관에 해당하는데, 혈족이 모여살았던 장소를 말한다. 성씨가 혈족을 따져 사람을 구분하고 분류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꼭 아버지의 성씨를 따라야 하는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어머니 성씨를 따른다고 해도 성씨의 유용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구분”을 “차별”과 동일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과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컴퓨터 파일도 보통 파일이름과 확장자(성에 해당)로 구분한다. 이 구분이 기능으로 치면 얼마나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

성명의 본래 기능이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짓는 것이라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성을 자주 갈아치우고 이름을 밥먹듯이 바꾼다면 성명은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오늘은 민들레라고 해놓고 그 다음날은 질경이라고 하고 그 다음날은 소나무라고 한다면 뭐하러 이름을 짓는단 말인가. 혼자 사는 무인도에서 심심풀이로 그런다면 모를까 사람들이 모여사는 데서 그런다면 참으로 혀를 찰 일이다. 따라서 이름을 만들때부터 신중해야 하며, 이름을 바꾸더라도 분명한 이유와 제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성姓은 이름보다도 더 엄격해야 한다. 부계든 모계든 간에 혈족이라는 분류가 마구 바뀐다면 참으로 혼란스러운 일이다. 미혼모의 성을 따르는 경우와 같이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모를까 제멋대로 성을 바꾸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오래 된 전통과 관습을 자신의 오호에 따라 하루아침에 부정하는 철딱서니 없는 짓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들 남녀평등이니 인간의 자유니 하면서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심밖에는 남지 않는다.

자식을 데리고 개가한 여자가 아이들의 성씨를 새 남편의 성씨로 바꾸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그들”이 개인의 인격권이니 자유를 내세우지만 그 논리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같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인식이 빈약하다. 자기 성명을 불러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없다. 그러면 대체 몇번을 개가하여 아이들의 성씨를 바꿔놔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자기가 안달하여 개가를 해놓고서 자기 성씨는 멀쩡하게 놔누고 왜 남(자기 아이지만)의 성씨를 들먹거린단 말인가? (결혼했다고 남편의 성씨로 불러달라고 했다가 이혼하고 나서 천연덕스럽게 다시 원래 성씨로 불러달라는 어느 미국인 여자의 말 속에는 그녀만의 자유가 있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없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치도 생기지 않는다.)

부모와 자손들이 성을 공유하는 것이 일관성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일은 자연스럽다. 모계사회라면 할머니와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계사회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이들이 서로 다른 성을 쓴다면 성을 쓰는 의미가 없다 (그냥 이름을 쓸 일이다). 예외이긴 하지만 미혼모의 성을 따른 아이들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생부가 분명한데도 어머니가 개가했다는 이유로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일은 부자연스럽다. 아이가 땅바닥에 넘어져 운다고 땅바닥을 "때찌"하는 짓이다. 아이가 아무래 울고 불고 한대도 생부를 밝히고 아이를 훈계해야 할 일이다. 이런 상식에 관한 일을 가부장제도니 호주제니와 억지로 연결하려는 사람들이 나는 거북하다.

계속 ...

2010. 9. 7 (수정: 2010.9.9; 2010.9.12 "황당한 시츄에이션" 추가; 2010.10.10; 20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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