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성 함께 쓰기"를 비웃다 5

6. "그들"의 이기주의와 가식을 말한다

"그들"은 나만 만족하고 되는 것이지 자손들이 다른 사람들이 어찌되든 말든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참으로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남녀평등을 하자고 하면 평등이 되고 자유를 원하면 자유가 바로 구현된다고 착각하고 사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성을 적어주면 남녀차별도 없어지고 성비불균형도 해소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토달지 말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성을 불러주면 안되겠냐고. 그러면 내가 9800자나 되는 성을 만들어서 꼬박꼬박 불러달라고 한다면 “그들”은 어찌 대꾸할까? 왜 9800자냐고? “내 맘이다. 니덜이 멋대로 성으로 장난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리 어머니를 애닯게 생각한다면 어머니를 낳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찾을 일이며, 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낳은 분을 찾을 일이다. 남녀평등을 주장한다면 어머니 성을 앞에 붙일까 뒤에 붙일까를 고민하기 전에 스스로 어머니를 평등하게 모실 일이다. 스스로 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어머니 할머니라고 홀대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그들”이 모두 효자와 효부로 칭송받은 다음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순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성을 바꾸지 않더라도 다 그 훌륭함을 칭송하고 본받으려 할 것이다. 집에서는 안그러면서 밖에 나와서는 마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함이 있어서 어머니 성을 뒤에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처럼 군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가식이고 허위일 뿐이다.

남녀평등을 외치고 성비불균형을 걱정하지만 뜬금없는 "성姓짓기 장난질"에 몰입하다보니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사람취급도 안하고 성씨를 골라 재생산을 해야 하는 "성姓차별"에 이르렀다. "그들"이 몸서리치게 저주하는 가부장제는 여자성을 물려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여자들의 성씨를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또한 여자들에게 안방과 곡간열쇠를 내줬고 제사때 할머니,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를 차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제사 때 할머니도 같이 모시고 할머니 제사때 할아버지도 모신다. 요즘 제사에 여자들이 참여하는 일이 흔하다. 족보에 꼬박꼬박 여자자손의 성명을 "차별없이" 적어올린다. 꼭 제사를 지내야 하고 족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이렇게 자연스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성짓기놀이"가 가부장제보다 나은 것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직까지도 케케묵은 칠거지악이니 씨받이 타령을 하면서 세월가는 줄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씨받이 얘기만 해도 그렇다. 씨받이나 씨내리를 들일 여력이 있는 집안이 대체 몇이나 된단 말인가? 시험관 아이를 골라서 만들 수 있는 있는, 딸이라고 하여 가뿐히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가진자들, 배운자들, 목에 힘주고 사는 자들이나 그러할 뿐이다. 대다수 평범한 백성들은 그런 것을 따질 여력도 없이 그저 새끼니 귀엽고 부모니 극진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 땅의 평범한 백성들은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성을 쓰지 않는다 해도 그저 그분들이 주신 달콤하고 꿈같은 느낌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딸도 아들도 달디 달 뿐이며,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외할아버지도 똑같이 그리울 뿐이며, 어머니도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젖가슴처럼 포근하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에서 남존여비가 존재한단 말인가? 존재한다면 오직 "그들"의 삐뚤어진 사고와 언어에 대한 무모한 집착일 뿐이다.

역설적인 것은 "그들"은 가부장제 시절로 치면 씨받이나 씨내리를 들일 여력이 있는 "먹물"에 해당한다. 못배우고 힘없는 백성이 씨받이를 들이고 남녀평등한다며 성을 갈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배부른 "먹물"들이 저질러 놓은 일이면 스스로 뼈아프게 반성하고 몹쓸 행동거지를 바로잡을 일이 아니던가. 왜 멀쩡한(죄없는) 백성들에게,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 남녀차별이 어떠느니 하면서 훈계를 하고 뜬금없이 성을 갈아야 한다고 선동하는가. 참으로 "너나 잘하세요."

설사 그 "먹물"들이 씨받이든 뭐든 못된 짓을 했다 해도 그 수와 효과는 미미한 것이다. 마치 "그들"이 아무리 선동을 해도 그 수가 미미한 것과 같다. 세상의 반은 여자고 또 다른 반은 남자라는 경험 증거가 "먹물"들의 난동이 세상을 바꾸지 못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약 모든 백성들이 남아선호에 찌들어 있었다면 어찌 이 사회가 존립할 수 있었단 말인가. 딸을 낳았어도 아들을 낳았어도 숙명으로 알고 곱게 키워낸, 이 나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백성들,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공이 있을 뿐이다. 그 말없는 세상의 주인을 어리석다 모욕하지 말라. 서푼짜리도 안되는 유치찬란한 장난질 아닌가.

7. “그들”의 사고방식이 문제다


내가 화가 나는 것은 단순히 “부모 성 함께 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운동을 하는 “그들”의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이다. 스스로 진보니 여성주의니 칭하면서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만 고루한 사고방식 자체에 취해 있다. 스스로를 바꾸기보다는 멋들어진 단어와 구호를 찾기에 몰두할 뿐이다. 자신의 주장에 반대를 하면 반동이나 수구세력으로 몰아붙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용맹스러운 사람들이다. 어머니 성을 병기한 자신들은 남녀평등을 원하는 사람들이고 어머니 성을 적지 않은 대다수 백성들은 부계전통에 매몰되어 가부장제와 남존여비를 사수하고 남녀평등을 결사 반대하는 “골통”들이란 말인가.

귀납적으로 살펴본 “그들”의 사고는 다음과 같은 얼개로 되어 있다. 1) 기존 제도와 사고방식에 도전하는 것이 정의라고 확신한다. 2)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 정답이고 진리라 믿는다. 3)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무식한)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틴다. 4)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반성이 없다) 하지만 반항은 멋있게 보일지는 몰라도 항상 정의가 아니며, 튀는 생각을 하기 전에 공부를 하는 것이 순리이며 (훌륭한 생각은 운동을 벌이지 않아도 남들이 먼저 인정해준다), 그들 스스로 중생임을 알아야 하며(겸손할 줄 알아라), 반성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스스로 어리석은 백성들을 이끌어 나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정작 그 어리석은 백성임을 보지 못하는 정말 어리석은 자들로 보인다.

“그들”의 생각은 애초부터 틀려먹었다. 평등과 차별을 기계다루듯이 생각한 것부터 삐딱한 것이다. 그러니 평등을 구현한답시고 튀는 언행을 하고 돌아다니지만 또다른 차별을 낳고 사회갈등을 유발할 뿐이다. 활쏘는 자세가 삐딱하니 활이 과녁에 맞을 까닭이 없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재생산을 위해 남자와 여자가 호응해야 한다는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귀결이다. 남녀차별을 철폐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게도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나는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주장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그 천박성과 무책임성에 화가 나기도 한다. 역사를 망각하고, 관습을 습관처럼 무시하고, 상상을 현실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행동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을 하지만 그 귀결로 자손과 사회가 혼란스럽고 힘들게 되는 것에 초연한 사람들이다. 이 나라에서 사는 마지막 돈키호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로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접할 때마다 참으로 씁쓸하고 불편한 마음이다. 차라리 그들은 "여자 성씨 갈아엎기"에 앞장설 일이다.

끝.


2010.9.8; 20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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