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가게 아주머니의 겸손과 진지함

추석이 가까와 온다. 선물로 무엇을 가져갈까 하다가 지역에서 자랑거리인 청주를 사가기로 했다. 물좋고 쌀좋기로 일본에서 소문난 이곳에 유명한 청주가 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리라.

신깐센역을 지나쳐 허름한 골목길을 따라 가다가 검은 칠을 목조건물로 들어갔다. 밖에서 때는 한국의 70년대 시골거리를 보는 듯한 촌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엇뜻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내장식이다. 시골구석에서 품격있는 술상점이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문을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주인이 겸연쩍어하며 다가온다. 상냥하게 무어라 말을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일본에 얼마 되지 않아서 일본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주인이 부끄러워하며 허리굽혀 인사하는 모습에서 마음을 있다. 일본인들이 습관처럼 "아리가토오 고자이마쓰" 입에 달고 사는 것을 알지만 그분의 부끄러움은 진심으로 전해져 온다.

술과 안주를 파는 선술집(bar) 아니라 각종 주류를 파는 술가게(liquor store)이다. 나무로 진열장에 각종 술이 제조사별로 가격대별로 진열되어 있다. 포도주와 위스키같은 양주도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청주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홉들이 병을 기준으로 좋은 청주는 2천엔에서 5천엔까지 다양하다. 100년을 넘게 이어져 왔다는 역사는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역사의 무게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상표가 재미있다. 어렸을 참기름을 담던 소주병에 그려진 상표보다도 촌스럽다.

구보전이라는 청주를 골랐다. 일본의 대표 청주라고 한다. 백수, 천수, 홍수, 벽수, 만수로 나뉘는데 이번에는 벽수와 만수를 집어들었다. 솔직히 청주 맛을 모르기 때문에 과연 값어치를 할는지는 없는 일이다. 다만 받는 이를 상상하며 잦은 병치레로 몸이 허약해진 매형을 위해 새파랗게 젊게 사시라고 벽수를 선물해주고 싶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술은 골랐는데, 포장해달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비행기 짐칸에 실을 것이니 싸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감한 일이다. 여주인은 일본어로 말하고 나는 영어로 말하는 상황이니 어쩌겠는가. 여주인 역시 난감할 뿐이다.

주워들은 소리로 한국이라는 단어와 공항이라는 단어를 어설프게 말했다. 그리고 포장하는 시늉을 냈다. 한참을 있더니 여주인이 밝은 소리로 답을 한다. 나는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주인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챘음을 있었다. 아마도 일본어밖에 말할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했을 것같다. 얼굴에 씌여진 표정이 그리 말을 한다. 어쩌면 지난 번에 청주를 사간 얼굴임을 기억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주인이 청주를 포장하는 것을 지켜본다. 지난 번처럼 포장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물방울비닐을 가져와서 이것을 원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나서 정확히 재서 가위로 자른다. 병을 꺼내서 물방울비닐로 두른 스카치테잎으로 아래와 위를 봉한다. 조심스레 맞춤 종이상자에 넣고 마무리를 한다.

다시 종이상자 두개를 나란히 놓고 물방울비닐로 둘러싼다. 정확하게 길이가 맞는다. 스카치 테잎으로 아래, , 옆을 고정시킨 두꺼운 테잎으로 옆을 마무리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릴 밖에 없다. 비닐봉투에 넣을 있는지 손짓을 하니까 포장한 종이상자 개를 비닐봉투에 넣고 흔들리지 않게 스카치 테입으로 고정시킨다. 여주인은 자신이 일을 흐뭇하게 생각하는 느낌으로 나를 본다.

계산을 한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인지 계산기에 숫자가 찍히는 것을 보라고 한다.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영수증을 프린트해서 주면서 각각 항목이 어떤 것인지를 차근차근 말해준다. 제일 마지막은 세금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정말 정중하게 "아리가또오 고자이마스" 말한다. 참으로 황송하기까지 하다.

여주인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일까? 진지한 눈빛만도 못한 것이 언어 아닌가. 그리고 여주인을 생각한다. 어쩌면 나와 동갑이거나 많은 나이일텐데 참으로 곱게 늙은 분이다. 하지만 분의 마음씀씀이에서 20 초반 아가씨의 풋풋함을 느낀다. 못내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음 손을 맡긴 처자의 부끄러움이다.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여주인이 일하는 자세이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알아내서 정성을 다해 물건을 준비해 주셨다. 물방울비닐을 자르고, 병주위에 두르고, 다시 종이상자에 넣고, 종이상자를 다시 포장하고... 모든 과정에서 긴장과 진지함을 놓치 않는 "열심" 나는 고맙다. 그리고 모습이 아름답다.

어쩌면 우리 부모세대들이 그러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일하는 자체에 몰두했던 세대. 그것은 오랜 우리 민족의 정서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선 성리학의 유산일는지도 모른다. 기억에 남는 부모세대들이 그렇게 실하게 일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풍족하게 생활하게 것이 모두 분들의 일에 대한 겸손함과 진지함 때문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세대들은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에 매몰되어 일보다는 결과에 목매고 있는 것같다. 누가 길거리를 쓸든 음식을 만들든 글을 쓰든 여주인이 보여줬던 겸손함과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품격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국격"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나서보지만 기회주의자들과 천민자본주의가 망쳐놓은 지금 세대의 가치관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제와서 "국격"이라니-- 자체가 전두환의 "국풍" 것같아 씁쓸하다-- 참으로 한심하다.

나는 일에 대한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보고 있다. 풋처녀의 설레임과 부끄러움으로 일에 임하는 젊은 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이것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보물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위정자들의 헛된 구호에 속아 경제발전이니 나라가 어쩌니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보물을 깨뜨리면서 점점 품격을 잃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난을 극복하고 개발을 한답시고 산과 강을 파헤친 것처럼 윗세대들의 자랑스런 가치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제 우리 세대는 일에 대한 진중한 자세를 잃고 이상 개발도 발전도 못하는 그런 지경에 빠진 것은 아닌지... 밥은 얻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정작 사람과 일을 잃은 것은 아닌지... 비굴한 인간이 되어 경박스런 일을 하면서 밥숫가락을 입에 넣고 헤벌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본 시골의 술가게 여주인의 풋처녀같은 모습을 아름답게 보면서 우리 사회의 겸손과 진지함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부끄러움과 진지함을 가진 젊은이들을 만나보고 싶다.

20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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