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를 매장하는 광기들의 합창

올들어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연간 등록금이 천만원인 시대에, 더구나 최고 과학영재들이 모인다는 곳이니 다들 들어가고 싶어하는 학교임에 들림없다. 그런 학교에 들어간 영재가 자살을 선택했으니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유족들의 충격과 원망과 슬픔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대하는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가 몹시 불편하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고 나선다. 다른 학교도 아닌 명문 대학이고 그동안 파격에 가까운 대학개혁으로 주목을 받은 학교가 아닌가. 대체로 학생들의 자살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고, 그 원인이 서남표식 개혁에 있고, 그러니 개혁정책을 후퇴하거나 포기하라는 의견이다. 어쨋거나 총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용퇴"하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신자유주의"가 어쩌고 "과도한 경쟁"이 어쩌고 하는 대목도 빠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반론은 정치권과 언론의 파상공세에 묻히는 형국이다.

여론재판이 아니라 차라리 마녀를 사냥하는 광기다. 과연 서남표는 그런 비난과 저주를 받을 만한 죄를 졌는가. 

1. 서남표의 죄목


카이스트에 발을 담근 적도 없고 서남표 총장을 사사로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에게 퍼붓는 저주가 한참 지나치다고 본다. 여론재판과 마녀사냥 수준을 넘어 한 인간을 "부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서총장이 학생을 학점기계처럼 취급해 사람의 창의성을 파괴했다고 비난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시류에 편승해서 그의 인간됨(인격)을 함부로 파괴하고 있다. 먼저 그의 죄목을 살펴보자.

먼저 성적이 3.0 이하인 학생에게 성적에 따라 수업료를 부과했다. 최고 600여만원까지 내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징벌적"이고 "비교육적"이라고 비난했다.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수업부담이 커진 나머지 쉬운 과목만 골라듣게 되고 창의성을 개발하지 못한다고 한다. 수업료를 내야 하는 학생들은 하루 아침에 영재에서 낙오자로 낙인찍힌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급기야 자살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또 전과목을 영어강의로 했다고 한다. 물론 교양과목을 제외한 전공과목을 모두 영어로 가르치도록 했다. 보도내용은 보니 현재 9할이 좀 넘는 과목이 영어강의라고 한다. 영어강의가 교수와 학생 간 의사소통을 저해하고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그래서 자살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하필 이 어수선한 시기에 장래가 촉망되는 교수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서남표 총장이 들어서면서 교수승진이 까다롭게 되어 교수들을 상당한 압박을 받아다고 했다. 대학 순위가 올라간 만큼이나 교수들의 스트레스도 증가하여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고 해석하고 있다.

과연 이 죄목들은 합당한가.

2. 서남표의 죄를 따져보자

서남표 총장에게 학생들을 자살로 몰아 갔다고 죄를 물으려면 다음 몇가지를 밝혀야 한다. 먼저,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이 자살한 수와 비율이 비슷한 여건에 처해 있는 다른  학교에 비해 현저하게 크고, 자살한 이유가 수업료 부과와 영어강의이어야 한다. 인과관계로 치면 자살한 학생들이 카이스트에 입학하기 전에는 멀쩡했는데 입학한 다음에 그 지경이 되었음이 밝혀져야 한다. 또한 학생 자살에 대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아 학교 책임자로서 임무를 게을리 했음이 증명되어야 한다.

과연 카이스트에서만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그 수가 현저하게 많은가. 명문대학에서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명문대학이 명문대학인 이유는 경쟁이 심하고 공부량이 많고 학업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교수들의 스트레스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유능한 졸업생이 배출되고 좋은 연구가 이루어진다. 물론 언제나 예외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서 명문대학이 되는 것이다. 정당하게 서남표의 개혁을 비난하고 싶다면 카이스트와 유사한 여건에 있는 학교의 자살사례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MIT나 인도공대가 카이스트처럼 개혁을 시도할 시기 (지금이 아니라)에 학생 자살이 어떠했는지를 조사해서 비교해야 할 것이다. 그런 수치가 제시되었는가?

카이스트의 자살률이 다른 유사한 여건에 처한 대학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면 (랜덤에러 수준을 벗어났다면) 그 자살이 서총장의 개혁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컨대, 네 명 모두 수업료공포와 영어강의로 심각하게 고통받았으며, 실제 수업료를 내야 해서 금전상 그리고 체면상 (영재로 알려졌는데 수업료를 내야 하는 열등생이 되었다는) 큰 손실을 봤고, 그 결과로 학생이 자살을 선택했음이 밝혀져야 한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네 명 중 두 명은 평균 학점이 3.0이 넘었고, 한 학생은 이성문제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모두 카이스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울증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살에 이르게 된 이유를 수업료부과와 영어강의로 못박을 수 있는가?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카이스트도 학생 상담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교수와 상담하라"고 누누히 고지를 했다고 한다. MIT와 비교할 수 없지만 다양한 사회과학 전공과 교양학부도 운영하고 있다. 학교당국이 학생들이 죽든 말든 죽어라 공부만 하라고 방치했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학교당국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난할 수는 있으나 그 죄를 묻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러한 까닭으로 서남표 총장은 무죄다.

그래도 서총장을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먼저 이대통령을 저주할 일이다. 올해들어 4대강 사업을 하느라 10명이 사망했다. 조기집행과 무리한 공사강행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자살률로 따지면 한국은 단연 OECD 으뜸이다. 연간 만명이 넘게 자살을 했고 이는 10만명당 25명이라고 한다. 확인된 사실이다. 학교생활(성적경쟁)에 지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한 경우가 상당수다. 백성들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한 장본인이고 사회복지를 줄이고 삽질예산만 늘린 의사결정자이니 모든 책임이 이명박에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또 군대에서 자살하는 젊은 군인은 또 얼마나 많은가.(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훈련도 하지 않고 병사들을 "고이 모셔야" 하는가?)매번 북한에게 쥐어터지고 벙커로 들어가는 군통수권자가 누구인가? 서남표가 발길질을 당할 죄를 범했다면 이명박은 수백번 돌팔매질을 당해도 싼 죄를 범한 것 아닌가? 그런 중죄자는 제쳐두고 (뭐라 비난하면 잡혀갈까봐 벌벌떨면서) 힘없는 늙은이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청와대에서 뺨맞고 와서 카이스트에서 화풀이하는 격이 아니던가. 

3.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는 무엇인가?

학생들은 서남표의 개혁이 경쟁만 부추기고 창의성을 죽이고 있다고 한다. 서총장의 개혁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총장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하였다. 총장선거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학교구성원의 의견에 귀기울이라는 의견을 빼고는 의미없는 주장이다.  

과연 서남표 총장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을 방해했는가? 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작정을 하고 경쟁하도록 했는가? 평생을 대학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평생을 학생들과 지낸 사람 아닌가... 아무리 양보를 한다해도 서총장은 대학과 학생들에게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그 정도 명성을 쌓은 사람이 그 나이에 그런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의도와 열정이 모든 허물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보기에 학생과 교수와 총장 서로 행복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방법이 다를 뿐이다. 

사실 서남표식 개혁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카이스트의 대학순위가 높아졌다 해도, SCI논문이 많아졌다고 해도, 멋드러진 건물이 잔뜩 늘었다 해도 그것이 성공이라고 속단하기 어렵다. (나는 대학순위와 논문수와 건물이 아닌 교수와 학생들의 열의와 희망이 더 중요한 것같다. 특히 한국대학은 순위와 건물에 몰입한 결과 사람을 잃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자살하는 학생이 늘었다 해도 그것이 곧 개혁실패를 말하지는 않는다. 대학이라는 특수성, 그것도 그냥 대학이 아닌 카이스트라는 특수성에 비추어서 차분히 판단해야 할 문제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바라는 행복한 학교는 과연 무엇인가? 경쟁이 없고 스트레스가 없는 학교인가? 돈걱정없이 학점걱정없이 하고 싶은 것을 원없이 할 수 있는 그런 학교인가?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술판 놀음판을 벌여도 되는 그런 천국을 말하는가? 공부하기가 너무너무 쉬운 "카이스트 유치원"을 원하는가? 학생들 치기어린 구미가 총장선거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학교인가? 전교생 소개팅 주선이나 매월 소녀시대 카라 공연 개최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그래서 학생들의 행복을 친절하게 챙기는--를 총장으로 밀어붙이고 학사관리를 까다롭게 하려는 후보--그래서 학생들의 행복을 박탈하려는--는 끌어내리면 행복한 것인가? 세금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의과대학을 진학하고, 연예계로 진출할 수 있는 행복을 말하는가? 이러면 정말 행복한가?

왜 카이스트 학생들은 그런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무슨 특권으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카이스트아닌가? (과학고등학교 출신이 많다는데 그것도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곳 아닌가) 그래서 백성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선호 외에 책임감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세계 최고 석학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백번을 양보해서 백성이 낸 세금으로 국가고시나 의대 (한의대) 공부를 한다면 너무한 것아닌가?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주장하려는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구차하지 아니한가?

물론 평점 3.0이 높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다른 대학에서도 그 정도 점수를 받지 않으면 장학금에 제한을 받는다. 카이스트는 점수에 따라 6만원부터 600만원까지 (사실상 300만원 미만) 수업료를 내야 한댄다. 다른 대학에서 2.98이면 장학금 전부가 날아갈 수도 있는데, 카이스트는 6만원을 내면 그만이니 그리 가혹한 것도 아니다. 전부 F를 받지 않은 이상 600만원을 낼 가능성은 없다. 300만원 수업료를 내는 것이 충격이고 고통이어서 자살을 해야 했다면, 그보다 많은 수업료를 내는 다른 학교 학생들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너무 배불러 터진 소리아닌가? 3.0이 그리 충격이면 3.0이 안되고서도 자살을 안하는 다른 학생들은 죄다 겁장이란 말인가? 아님 똥인지 된장인지 분별못하는 얼간이나 불감증 환자인가?

어차피 문제가 되는 것은 정규분포로 치면 가운데에 몰려있는 대다수 "평균인간"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몰려있는 "한계인"이다. 너무 똑똑하고 뛰어나거나 혹은 너무 뒤쳐져서 대학에서 지원하기가 어려운 부류이다. 어느 대학이든 어느 사회이든 마찬가지다.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똑똑한 "천재"이거나 똑똑한 "바보")이 사회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대표성을 가진 것처럼 해석해서는 안된다. 정녕 자살한 4명을 말하고 싶다면 천재 4명을 함께 말해야 할 것이다(최상위에 있는 4명이 이전에 비해 월등히 낫다면 어찌할 것인가?). 물론 따뜻한 대학이나 사회라면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포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따뜻하지 않다 해서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대학이 엉망이라거나 실패한 것이라 결론지을 수는 없다.

지금껏 영재 소리를 듣다가 수업료를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자괴감과 좌절감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다들 1등만 달려왔던 학생들이지만 그들끼리 경쟁하면 1등도 있고 꼴찌도 있기 마련이다. 카이스트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라 스카이대학 (서울대, 고대, 연대)에서도 일어나고 MIT, 하바드, 스탠포드에서도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다. 반대로 이름없는 대학에 모인 "꼴찌"들 중에도 1등이 있고 꼴찌가 있는 법이다. 그들도 경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은 더 비싼 등록금을 벌기 위해 부업하느라 스트레스는 더 쌓인다. 그런데  왜 카이스트만 그리 유난을 떠는가!) 서남표가 경쟁을 부추겼다고 말하지만 애초부터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좌절감과 자괴감을 감내하지 못할 사람이면 "용의 꼬리"가 아닌 다른 학교로 진학하여 "닭의 머리"가 될 일이다.

4. 스스로 3류학교가 될 것인가

모름지기 어떤 대우를 받으려면 그것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것이 명예가 되고 힘(권력)이 된다면 그만큼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고시나 의대가 아닌 (졸업하고 한참 나중에 관심이 바뀌어서라면 모를까)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나름대로 공헌하는 것이 세금으로 자신을 교육시켜준 대한민국 백성들에 대한 보답이다. 서남표 총장을 들먹이기 전에 그것이 기본이다. 어찌 긴장을 마다할 것이며 경쟁을 마다할 것인가?   

서남표 총장은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 입을 벌리고 수돗물을 붓는 것처럼 공부를 했다고 했다. 과장된 면도 있고 시절이 변한 것을 고려하지 못한 면도 있지만, 명문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분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면 비난할 것이 아니다. 이름없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차라리 죽어라"는 뜻이겠지만 명색이 카이스트 아닌가... 스스로 도전과 경쟁과 자부심을 포기하고 마냥 널널하고 우아하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하려는가? 경쟁이 없는 세상이 그토록 그립다면 속세를 정리하고 무인도에 가서 세월을 낚을 일이다. 경쟁도 없고 지극히 평온한 세상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일 뿐이다. 그런 행복한 대학을 꿈꾸는 것이라면 카이스트는 스스로 3류대학 간판을 달 일이다.

행복한 대학생활을 원하는가? 무엇이 행복이란 말인가? 대학생 나이는 그 자체가 좌절이고 갈등이고 고뇌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기뻤다가도 슬프고, 즐거웠다가도 비통한 시절이다. 경쟁이나 학점이나 취직하고는 다른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자체가 행복이다. 뜨겁다가 더웠다가 희망이었다가 절망이었다가를 반복하는 그 탄력성이, 그 젊음이 행복인 것이다. 그것 외에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인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반항하고, 좌절하고, 환희를 느끼고를 반복하는 그것이 축복이고 행복인 것을 깨달을 일이다.

카이스트같은 명문대학에서 영어강의는 세부 사항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큰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세상이 국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는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수단(목적이 아니라)이다. 모든 전공과목을 영어로 한다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으나 영어강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을 선택할 정도라면 학교와 학생 모두 잘못한 것이다. 학교는 학생을 잘못 뽑은 것이고 학생은 욕심이 지나치고 분수에 넘치는 일을 선택하여 같이 망한 것이다. 

카이스트는 학생을 뽑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카이스트에서 버텨내지 못할 학생을 뽑지 말아야 한다. 학생의 학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학생의 품성과 의지력과 체력도 평가하여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가 제공한 소중한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꾸준히 노력하고 졸업해서 기꺼이 사회에 봉사하려는 학생을 뽑아야 한다. 뭐든지 쉽게 포기하고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벅찬 허약한 학생을 가려내야 한다. 그저 기억력과 요령만 좋은 비실비실 엘리트가 아니라 몸도 마음도 건강한 학생을 단련시켜야 사회에서 원하는 건강한 지도자로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등록금 안내고, 카이스트 이름으로 취직하고, 국가고시를 치는 수단으로 카이스트에 오려는 학생을 골라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비단 카이스트만이 아니라 다른 대학에도 해당되며, 중고등학교 교육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되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5. 대화와 협력으로 다져가는 개혁

서남표 총장이 학생들과 교직원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같다. 한국어가 서툰만큼 구성원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서툴렀던 모양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학교 책임자로서 구성원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꼭 한국이어서가 아니라 서총장이 평생을 보낸 미국을 포함하여 인간사회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개혁은 지도자의 영감과 열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구성원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 아마도 평생 공학을 한 사람이여서 경영과 정치에 서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해도 구성원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부드럽게 진행하는 것이 관리요 경영이요 정치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너무 시끄럽게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징벌적 수업료"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공학"입장에서 추진한 개혁임을 말해준다. 조삼모사일는지는 몰라도 등록금 면제를 폐지한 뒤에 성적에 따라 장학금을 주는 것으로 말을 했다면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돈을 모두에게 주고서 성적을 보고 일부에게서 돈을 회수하는 것과 성적에 따라 다수에게 돈을 주는 것은 내용은 같지만 형식은 차이가 있다. 눈가리고 아웅일수도 있으나 제도를 바꿀 바에야 후자로 하는 것이 더 "부드러운" 관리에 가깝다.
 
3.0이라는 학점도 일정한 시간을 두고 조정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같다. 물론 3.0은 좋은 점수는 아니지만 아주 엉망인 점수는 아니다. 따라서 2.0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 학기는 2.2, 그 다음은 2.4, ... .3.0으로 조정했더라면 학생들이 덜 피곤했을 것같다.

영어강의도 시간을 두고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채택했어야 했다. 처음에는 영어강의를 하는 것을 권하고 적극 유인하다가 (예컨대 강의료를 더 주거나 영어강의를 상담해주고), 영어강의가 더 낫거나 영어강의도 괜찮은 과목으로 확대하고, 교수와 학생들이 적응해가는 것을 봐가면서 영어강의로 하면 안되는 과목만 빼고 모두 적용하는 방식이 좋았을 것이다.

또 영어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일반 영어교육과 아울러 영작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신입생들에게 수학, 물리, 화학같은 기초과학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고려해볼 만하다. 아울러 한글교육과 한글작문을 도와주는 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적어도 사회지도층이 될 카이스트 졸업생이 누구처럼 한글을 잘못써서 수시로 망신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학생들에게 "교수와 상의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실제로 그러한 상담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학교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학교와 교직원과 학생 모두가 만드는 것이다. 어느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상호성에 근거하여 서로 맞춰가야 하는 일이다. 학교에서 학생상담을 제대로 안해줘서 자살이 일어났다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학생들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고 자신의 일을 남에게 밝히는 일을 꺼리고 스스로 외톨이가 된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나 교수진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도전하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겸허하게 인정하고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젊은 날의 좌절이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이자 희망임을 깨달아야 한다.

6. 맺음말

지금 서남표 총장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저주는 지나치다. 마녀사냥이나 광기에 가깝다. 한때는 그를 개혁 선구자라 칭송한 자들이 같은 입으로 험담을 쏟아내고 사냥개처럼 물어뜯고 있지 않은가. 시류에 편승한 막말이든 저주에 가까운 "신자유주의" 비난든, 그가 보여주고 있는 대학과 학생들에 대한 열정을 가릴 수는 없다. 어차피 그들은 사람을 키우기보다는 자신들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없이 추켜세우다가 싫증나면 야수로 돌변하여 깎아내리고 짓밟는데 이골이 난 자들 아닌가. 서총장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그의 열정을 증명해 주고 있다. 서총장의 개혁과 학생자살 간 인과관계를 밝히지 않고서 우루루 몰려가 돌팔매질한다 해서 그의 인생이 함부로 폄하될 수는 없다. 하물며 천박한 마녀사냥과 광기임에랴.

하지만 선한 의도와 뜨거운 열정이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다. 학교 책임자이면 관리자로서 구성원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때로는 조삼모사가 필요할 수도 있고, 가장자리에 있는 소수 학생을 따뜻하게 품어줄 필요도 있다. 바라건대 과학을 공부하는 카이스트이니 학교 구성원들이 마음을 열고 사실과 논리에 근거하여 대화하고 지혜를 모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래서 졸업생과 교수들이 명문대학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건강하고 유능한 사회지도자로 성장하여 사회에 공헌했으면 한다.

충격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학생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 말씀을 드린다. 

20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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