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없는 주적개념과 대적관 교육

개념없는 주적개념과 대적관 교육

먼저 북한정권이 연평도를 포격한 이후 언론에 보도된 일 몇가지를 적어본다. 모두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지도층이 벌인 행동이다. 대통령이 북한정권의 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가운데 나온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실망스럽고 어이없다. 말은 말이고 행동은 행동이란 뜻인가...

-북한정권의 사전 도발 징후를 두고 국방부와 정보원이 다른 얘기를 하며 갈등하다.
-군면제자인 여당대표가 연평도에서 보온병을 포탄피로 착각하여 국내외 비난을 자초하다.
-국회의원 세비를 5% 인상하다.
-이명박 사저 경호시설에 국고 100억을 책정하다. 노무현의 아방궁보다 4배란다.
-SK 재벌 2세 최철원이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매값으로 돈을 건네다.
-황해에 미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모셔다 훈련하면서 한미 FTA 협상을 하다. 21세기판신미양요인가?
-일점 일획도 용납하지 않는다더니 자동차 부문을 미국에 대폭 양보하다.

1. 신임 국방부장관의 말
 
신임 국방부장관이 취임했다. 행정위주로 돌아가는 부대가 아니라 전투를 우선으로 하는 부대를 만들겠다고 한다. 북한정권의 도발은 한국군이 확실하게 강력하게 응징할 때에만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취임식에서다시 도발을 감행해 온다면 즉각적이고 강대한 대응으로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단지 군인다운 수사(修辭)라면 모를까 실제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면 걱정스럽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특별히 "승패와 직결되는 무형전력의 극대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휘관 중심의 정신교육을 강화해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인사청문회에서북한군이 주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힌 것에 비추어 언론에서는 국방백서에북한=주적이라는 주적 개념을 명문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또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해국가 안보 상황에 비춰 2012년에 전작권을 전환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노무현 정권의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5년까지 한국군이 준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전시 작전권 환수를 더 늦추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말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행동으로 어떻게 옮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껏 많은 장군들이 해왔던 말이다. 하지만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다. 먼저 주적 개념(主敵槪念)과 대적관(對敵觀) 교육에 대하여 적어 본다.

2. 개념없는 주적 개념과 대적관

주적(主敵)이란 주된 적이라는 뜻이다. 자신에게 위해를 끼치는 존재가 적()이라면 가장 위험한 적이라는 소리다. 주적이 있으니 당연히 덜 위험하거나 앞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적도 있다는 소리다. 주적 개념은 한마디로북한=주적이다. 한국군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해오고 있는 적개념 교육의 요체이다. 신임 장관의 말대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인식해야 하는데, 군지휘관이 정신교육을 통해 북한이 주적임을 부하들에게 교육하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敵愾心)을 고취해야 전투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소리다.

나는 이런 주적 개념이 한심스럽다. 흔히 말하듯이 개념없는 소리로 들린다. 사전을 찾아보면 다 알 수 있는 뜻을 굳이개념까지 동원하는 것을 보면서 군지휘부의 궁색함을 느낀다. 아직도 이승만 정권을 살고 있듯이반공멸공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느낀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아가들도 본능으로 누가 해를 끼치는지 다 아는 것을...

군대가 싸움을 하기 위해 존재하고, 싸움은 당사자간의 전략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위에 적은 적개념은 어이없다. 적이 누구인가는 그 자체로 전략이다. 전략은 상대방이 몰라야 효과가 있는 법인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적이 누군지를 밝히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미국이 그들의 주적이 누구인지 매년 공표하는가? 중국과 일본은 어떠한가? 북한은 남한을 주적으로 삼는가? 우문(愚問)이다. 공표했다고 해서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한심한 일이다. 설령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안다고 해도 굳이 글로 적어놓고 공표할 필요가 없다.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전략이란 이런 것이다. 요컨대 정치와 전략으로 치자면북한=주적으로 적어놓고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오늘은 적이지만 내일은 아군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일 수도 있다. 상식이다. 북한군이 지금은 남한을 공격하지만 통일이 된 후에는 백성의 군대가 될 것이다. 지금 미군이 혈맹이라지만 미래 한국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 140년 전 조선왕조 말에 미군이 군함을 몰고와서 조선을 협박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왕조와 한국왕조 간 벌어진 적과 아군 관계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이 자위대를 동원하여 독도를 점령하고 울릉도로 진격한다면 어찌하겠는가? “북한=주적으로 못박아 놨으니 일본군은 뭐라 하겠는가? 그때 가서북한=주적이 절대 아니고 이제부터는일본군=주적이라며 또 달달 외라고 주문할 것인가? 얼떨떨하는 병사들에게 잔혹한 731부대 생체실험 사진을 돌리고 비디오테이프나 DVD를 틀어줄 것인가?

엄밀하게 말해 한국 외에는 다 적이다. 현재의 적이든 미래의 적이든...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다. 그런데 적이 누구인지 적어놓고 달달 외는 것이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것도 장교가 아닌 병사들이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피아(彼我) 판단은 그 자체가 전략인데 병사들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북한은 군사로 치면 적이지만 협력(통일)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평화통일은 헌법에 적시된 내용이다. 같은 민족이요 형제니 서로 더불어 잘 살아보자고 하면서너는 나의 주적이라고 외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그러니북한=주적이라는 명시는 전략으로 봐도 상식으로 봐도 어리석은 일이다.

3. 피아판단은 장교의 몫이다

계서제(hierarchy)로 움직이는 군대에서 상명하복은 조직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판단하고 명령을 하는 장교와 명령에 복종하는 병사가 서로 협력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이다. 적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명백하게 장교의 역할이다. 특별히 별을 달고 있는 장군들의 역할이다. 터미네이터로 치면 목표물을 제대로 인식하여 각종 상황에 맞는 무기(병사)를 적절하게 동원하는 역할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 해서 병사들이 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거나 투표로 적을 결정한다면 그 군대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적개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고위 장교이지 병사가 아니다. 1950년대 제주도와 남도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나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어디 병사가 적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 벌어진 참극인가! 사리사욕에 눈먼 군지휘관이 터미네이터(군대조직)의 목표물을 부당하게 수정했기 때문 아닌가. 군대의 상명하복이 이런 것이니 고위 장교의 판단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대적관 교육은 하급 장교와 병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주로 일반 병사를 대상으로 한다. 장군들이 별을 주렁주렁 매달고 일반 정신교육(인기 유명인 강연 빼고)에 열심히 참석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군대는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존재임을 누구보다도 뼈속깊이 인지해야 하는 장군들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백성들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서는 절대 안된다는수퍼프로그램을 머리속에 장착하고 있어야 할 장군들이다. 목표물을 잘못 설정한 터미네이터는 백성들에게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적개념 교육을 받지 않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병사들이 받고 있다. 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전쟁이 나면 병사들에게 적이 누구냐고 물어볼 것인가!

자칭보수나 그 추종자들이 흔히 말한다. 노무현이 주적개념을 국방백서에 삭제를 했기 때문에 전투력이 떨어졌다고. 주적을 적어서 공표하면 적이 되고 국방백서에서 삭제하면 아군이 된다는 소리인가? 국방백서에 적시하면 전투력이 하루아침에 증가하는가? 참으로 순진하고 무구(無垢)함이 묻어나는 소리다. 대적관 교육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물론 노무현은 정치나 전략이라는 면에서 상식에 가까운 조치를 한 것이다. 하지만 대적관은 고위 장교들 (장군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병사들에게는 필요없다. 적이 누구인지를 적어놓지 않아서 전투력이 떨어졌다면 그것은 고위 장교들이 적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 대응 능력이 떨어진 것일 뿐이다. 이승만정권 시절처럼 준비도 대책도 없이 군통수권자에게 큰소리만 뻥뻥 치고, 눈치나 살피다가 4대강에 병력과 장비를 투입한 까닭이다.

4. 병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적관 교육은 전투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릴 뿐이다. 대적관 혹은 적개념 교육 내용은 놀랄만큼 단순하고 부실하다. 북한이 주적이다(주적개념). 북한은 나쁜 넘이다(적개심). 이것이 전부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다. 학력으로 봐도 병의 수준이 부사관보다도 나은데, 이런 것이 과연 필요한가? 이렇게 시험을 내보라. “지금 시점에서 다음 중 누가 우리의 적인가?” 1) 미군, 2) 북한군. 이 무슨 유치원 문제도 아니고... 아마도 세계 군대 중에 가장 학력과 능력이 높을 것같은 한국군 병사들에게 이런 질문이 가당키나 한가? 적개념에 사용되는 유인물도 책자도 비디오테이프도 정말 유치함과 섬뜩함 그 자체다. 이성으로 병사들을 끄덕거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으로 혐오할 만한 내용과 형식이다. 인터넷이나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로 많은 정보를 섭렵하는 요즘 병사들에게 이런 적개념 교육은 한마디로 하품만 나고, 약발도 안서고, 짜증만 돋구어 전투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정말 병사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군대의 역할과 상명하복과 시민소양일 것이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것, 평소에 개인 전투력을 배양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 동료와 다투지 않고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는 것 등이다. 또 한국의 역사가 어찌 흘러왔는지, 요즘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민주 시민으로서 어떤 소양이 필요한지, 어떻게 병영생활을 즐겁고 활기차게 할 것인지를 토의할 수 있다. 합리성으로 납득시켜야 하고 그들의 필요에 맞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것이면 족하다.

적이 누구고 그들이 나쁜 놈들이라는 것은 실제 전투가 벌어지거나 전쟁 중에 필요하다. 그때 군지휘관은 당면한 적이 누구인지, 구체화된 목표물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병사들에게 적개심을 고취해야 한다. 평시에 미래에 적이 될 지 아군이 될 지 모르는 대상을 주적으로 달달 외우면서 항시 미워하고 증오하고 분개하는 마음을 불태우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시에는 실전같은 훈련을 통해 주어진 임무를 숙달하고, 상명하복 체계를 세우고, 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건강한 정신과 몸을 단련하고 전우애를 다지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5. 맺는 글

다시 말하지만 피아 구별은 군지휘관과 고급 장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대상인 군지휘관들이 교육 주체가 되어 병사들에게 북한이 주적이고 나쁜 놈이라고 교육시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으니 참으로 개념없는 적개념 교육, 대적관 교육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군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대통령이 훈계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적을 판별해 내고 사전에 분석하고 어떻게 싸워 이길지를 강구해야 하는 군대의 두뇌이기 때문이다. 그 작전으로 군대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으며, 백성을 지킬수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맹장 밑에 약졸이 없다 하지 않은가.

사실 이기고 지는 것은 군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勝敗兵家常事). 다만 어떻게 이기고 졌는가가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권의 군대는 경계도, 보고도, 전략(정보분석), 대응도 실패하였다. 용서받기 어려운 참패다. 이러한 군대가 충직한 병사들에게 정신교육을 시켜봐야 소용이 없다. 병사가 아니라 군지휘관과 고급 장교(장군)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군통수권자와 국방을 책임진 주요인사들이 정신을 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물며 연이어 얻어터지고 포탄피인지 보온병인지도 헷갈리는 군면제 정권임에랴...

2010.12.5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조국 기자간담회 관전평: 조국보다 기자?

처칠의 혜안과 저질의 훼안

스킨쉽"이 영어사전에 안나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