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의 죽음과 김대중의 죽음

북한 주체사상을 체계화했고 김정일을 가르쳤다는 황장엽이 북한 노동당 창당기념일에 죽었다. 사람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정치꾼들이 앞다투어 조문을 가고 국립현중원에 묻는다 하고 (요건을 갖추기 위해) 훈장을 준다는 소리가 들린다. 참으로 불편한 마음이다. 죽은 자를 탓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죽은자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을 말하고 싶다.

왜 황장엽에게 번개불에 콩궈먹득이 훈장을 주어야 하는지, 왜 국립묘지에 묻어야 하는지, 왜 조문을 가지 않는 자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지 납득할 수 없다. 일개 (관직도 뭐도 없는) 탈북자가 죽었는데 조문을 안간다고 공당을 압박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상식으로 봐도 그러하고 이성으로 판단해도 그러하다. 살아생전에 군복무회피, 성추행, 탈세, 차떼기, 위장전입 등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도 죽기 전에 반공을 외치고 김정일을 비판하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단 말인가.

황장엽의 공은 무엇인가? 결국 남한으로 와서 북한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가 주체사상을 사실상 만든 자이고 김정일의 스승이라는 면에서 남한의 "자칭 보수"(사실상 보수와 전혀 관계없는 골통기회주의자)들은 높은 점수를 준 셈이다. 북한 정권을 굳건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인데,  기회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갈기갈기 찢어죽여도 시원찮은 원수가 아닌가. 그런데도 말년에 변절했다는 이유만으로 180도 돌아서서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정치꾼들의 모습이 나는 역겹기만 하다. 대체 황장엽이 남한에 어떤 공헌을 했단 말인가.

가만히 화가 치민다. 작년 전직 대통령인 김대중이 죽었을 때와 전혀 딴판인 모습이지 않은가. 어거지로 조문을 갔지만 그들은 얼마나 진심으로 애통해 했을까? 황장엽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의 100분의 1도 아니라면 너무 박한가? 국립묘지에 묻는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마지못해 유족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새였다. 오죽했으면 열혈 골통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전직 대통령을 국립묘지에 묻는 것을 결사 반대했을까? 무덤을 만든 뒤에는 묘를 파헤치겠다고 그 난동을 부리다가 기어코 불을 붙이기까지 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아무리 황장엽을 비판한다 해도 묘지를 파헤치겠다는 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정상인과 골통들의 차이가 이것이다.) 도대체 김대중은 남한에 어떤 해악을 끼쳤길래 그들은 그렇게 처절하게 김대중을 저주하는 것일까?

황장엽은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죽었다. 김일성대학 총장과 김정일 스승을 했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남한으로 와서 그의 가족들이 불행한 최후를 맞은 것은 사실이나 모두 자신의 선택에 따른 귀결이다. 자신이 살자고 처자식을 사지로 몬 것이다. 남한에 와서도 부족함 없이 지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도 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한참 젊은 여자와 사실혼 관계에서 자식까지 본 그였다. 호의호식도 하고, 권력도 쥐어봤고, 배신도 하고, 처자식에게 미안하고, 탈북자들에게 열렬한 인기도 얻었고 (자신들이 혐오하는 북한정권을 건설한 자에게 그리 열광을 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 돈도 많이 남겼다. 요컨대, 사람이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고 편안하게 (병으로 고통받거나 총을 맞아서 죽지를 않고) 죽었다. 결국 "해피엔딩"이다. 대체 우리는 황장엽의 무엇을 칭송하고 안타까와 해야 하는가? 왜 100년에 1명이나 나올까말까 한 충신이 죽은 것인양 그리 소동을 피우는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김대중은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인생이 고난과 위협으로 점철되었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긴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잘먹고 잘살자고 그런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배신하지 않고 독재자와 맞섰기 때문에 짊어져야 할 멍에였다. 비록 그가 임기 말 자식들 문제로 체면이 많이 상한 것은 사실이나 평생을 남한의 민주화를 위해 몸마쳐 싸웠음은 그들도 인정하는 바다. 그를 공격하는 자들이 만든 거짓말은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의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노무현의 죽음 앞에 한없이 슬퍼했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고 일갈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편안한 죽음이 아니었다. 묻힐 때도 실랑이를 벌여야 했고 죽어서도 한참동안 경찰이 묘를 지켜야 할 지경이었다. 세상이 이리 요지경이다. 100년에 1명이나 나올까 말까 한 탁월한 정치인라고 다들 말한다. 하지만 왜 우리는 김대중을 편안하게, 영광스럽게 보내지 못했을까? 그가 평생 믿고 의지했고 존경해마지 않았던 이 나라의 백성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난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묻는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북한정권에 붙어 호의호식하다가 말년에 생각을 고쳐먹고 젊은 처자와 편안히 살다 간 사람에게는 번갯불에 콩궈먹을 훈장을 내리고, 평생을 고생고생하면서 남한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가 처절하게 죽어간 김대중에게 그토록 박한 까닭은 무엇인가? 어찌하여 평생 독재자와 싸워온 김대중의 죽음이 평생 독재자와 호의호식한 황장엽의 죽음보다 못하단 말인가. 나는 생각한다. 기회주의자들이 세상을 휘젓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만일 김대중이 소신을 꺾고 독재자에게 붙었다면 그들은 변절자 김영삼처럼 영웅으로 추앙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로우면 원수조차 하루아침에 훈장감이 되고, 그들에게 해로우면 영웅도 충신도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만일 김정일이 망명하여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북한을 비난한대도 그들은 훈장을 내리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인가. 그때 가서 김정일의 값을 따져보고 판단할 자들이다. 김길태, 조두순, 강호순이 어느날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열열한 반공주의자가 된다해도 똑같이 손익을 먼저 따져볼 자들이다. 국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말이다.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강호순이 돌변하여 단 하루동안 열변을 토하다 죽었다 해도 부모가 죽은 듯 슬퍼하고 국립묘지에 묻어주자고 거품을 물 자들이다. 평생 북한 독재정권을 건설했다는 전력도, 성폭력 살인범이라는 끔찍한 과거도 "멸공반공" 앞에서는 아무 일이 아닌 듯 묻힐 뿐이다. 도대체 "반공"이 뭐길래 이리 사람의 상식과 이성을 무참히 짓밟는단 말인가? 이 나라의 암종이 어디 따로 있다던가.

북한을 비판한 것이 황장엽의 공이라 하는가? 북한 비판이라면 이승복을 비롯하여 조갑제, 김동길, 정형근, 주성영 등 기라성같은 열사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이들이 죽으면 또 가스통메고 떼거지로 몰려가 훈장을 주고 국립묘지에 묻자고 난동을 피울 것인가.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시켰다는 흉악범 김현희도 결혼해서 자식도 낳고 책도 출판하고 잘 살고 있다. 그녀가 죽어도 훈장을 내리고 국립묘지에 묻을 것인가. 단지 폭파사건의 주범이 북한임을 말하고 (북한을 비난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유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같은 "미녀"이기 때문에... 수백명을 죽인 그 죄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황장엽의 공이 있다면 그것은 반공에 목숨을 건 기회주의자들에게 이득이 되었다는 것 뿐이다. 북한정권을 공고히한 자가 북한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그들을 기쁘게 한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에게 늙은 "이승복"이 된 것이다. 그것 뿐이다. 요컨대 기회주의자들이 개인의 오호를 가지고 공공의 일로 포장하여 백성들을 호도하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을 저주하고 김대중을 그리 저주하는 것이고, 평생토록 북한독재정권을 주도했던 황장엽은 그토록 애닯은 것이다. "콩사탕"이 싫은 것이다. 참으로 화가 나는 일이다. 이 나라 백성이 우둔하여 그런 자들에게 완장을 채워준 것이다. 그래서 이리 참담하고 황당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이러고서 이 나라가, 이 나라 백성들이 어찌 죄를 면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하늘 우러르기 부끄럽고 어이없는 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산 자들이 이리 황망한 것이다. 황장엽의 인생을 지켜본 젊은이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열렬한 이승복이 될 것을 맹세할 것인가 아니면 어쨋거나 그때 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소신을 버리고 호의호식을 선택하리라 다짐할 것인가. 친북세력이라고 잡혀들어가서 비전향 장기수라고 죽을 때까지 "빨갱이" 낙인을 찍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 것인가? 배신자와 기회주의자만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이라 하지 않을는지... 황장엽이 권력의 중심에서 호의호식할 때 북한과 맞서서 장렬히 전사하거나 다친 남한 군인들은 대체 뭐라 할 것인가? 황장엽이 국립묘지에 묻힌다면 그 옆에 잠들어 있는 한국 군인들은 대체 뭐가 되는가. 영화에서 처럼 "적과의 동침"이 되나... 대체 훈장은 무엇이고 국립묘지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한참 늙으막에 늦둥이를 본 "인간승리"를 기념하기 위함이란 말인가.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평범한 백성들이 이리도 황망한 것이다. 

2010.10.13

첨기: 나는 황장엽이 제대로 된 학자였다면 북한을 비판하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는데 주력했어야 한다고 본다. 주체사상을 체계화했다면 반대로 어떻게 허물지에 몰두했어야 했다. 그것이 학자로서 갖는 양심이고 책임이다. 하지만 황장엽은 반성보다는 골통기회주의자들이 벌여놓은 판에 올라가 "열사 이승복"이 되는 일에 시간을 소비했다. 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움직이는 또다른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열렬한 노동당원이었고 남한에서 열렬한 반북세력이었고... 같은 점이 있다면 그는 북한에서든 남한에서든 호의호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처자식은 죽어가는데 그들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남한에서 젊은 여자를 취하여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두었다. 13년 남짓한 남한 생활이었고 향년 87세다. 참으로 복(출세, 권력, 자식, 여자, 돈, 편안한 죽음, 사후 추종 등)이 많은 사람이다.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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