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의 정치행정학

행정복합도시계획(세종시계획)은 참여정부시절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도시를 만들고 행정부처를 이전하려는 것이다. 위헌논란까지 빚었지만 5년여에 걸쳐 이해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여야 합의를 통해 결정한 국가사업이다.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물론 미래에도 큰 짐이 될 것이다. 행정복합도시는 서울집중을 완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수도든 일부 부처든 행정기관이 이전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부기관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면 "약발"이 먹히는 대안이다.

서울시장 시절 반대의사를 천명했던 이명박도 대통령후보 시절에 세종시 계획을 차질없이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것에 더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드닷없이 그 약속을 뒤집어서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나섰다. 세종시 계획이 원래 정략으로 추진되었으며 나라의 백년대계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행정부처가 분산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했고 자족기능이 부족하다고 했다. 지난 1월 정운찬 총리는 행정복합도시 (세종시)를 수정하는 안을 발표했다. 세종시 원안을 추진하면 나라가 거덜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보건설을 반대하다가 총리가 된 후에 하루아침에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세상에 믿을 넘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나는 행정복합도시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답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그 대의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인구분산효과가 있겠지만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구분산만 따진다면 최소한 대구 밑으로 입지를 선정했어야 했다. 이미 계룡대에 출퇴근하는 군인들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주 대전사람들도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수년간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겪으면서 여야합의로 계획을 정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한국행정사례로 치면 매우 드문 일이고,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행정복합도시계획을 바꾸는 수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생각나는 몇가지를 적어본다. 

수정안의 핵심: 행정부처를 안옮긴다

행복도시계획과 수정안이 무엇이 다를까. 핵심은 행정부처를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기업을 유치하고 자족기능을 늘리기 위해 녹지를 줄이고 상업용지를 늘린다고는 하지만 결론은 정부부처를 서울에서 옮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에게 땅을 싸게 팔고 많은 혜택을 준다는 둥 말은 많지만 나머지는 장식품일 뿐이다.

한마디로 서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국토균형발전을 포기하고 효율성을 내세워 지지기반인 "강부자"에게 "보은"하려는 것이다. 행정기관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떤 도시를 건설하든 서울은 피해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혁신도시든 교육과학도시든 다 쓸데없는 일이다. 이것이 정치이다. 국가대계를 위한 일이니 정략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했다. 정작 자신은 정략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면서도 남들보고는 하지 말랜다. 

세상 천지에 정치가 아닌 국가사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장사치가 손해를 보면서 판다면 믿겠는가? 정치꾼이 정략이 없고 정치를 안한다고 말하면 믿겠는가? 이문을 남기지 못하는 장사꾼이 망하듯 정략이 없고 정치를 안하는 정치꾼 역시 망하는 것이 이치다. 정당하게 이문을 남기느냐 정직하게 정치를 하느냐를 물을 뿐이다. 

그런데 하라는 정치는 안하고 이문만 남기려는 대통령이라... 월드컵 경기를 하는데 축구에는 문외한이지만 잔머리로 화투만 잘 치는 타짜가 나온 셈이다. 축구화신고 "난닝구"바람으로 나와 잔디구장에 담요펼쳐놓고 고스톱치자며 화투를 돌리고 있는 셈이다. 멋진 경기를 기대하며 "대-한민국"을 입모아 외치던 붉은 악마들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넌 뭐니???" 

장사꾼은 이문을 남기고 월드컵에는 축구선수가 나가고 붉은 악마는 응원석을 지키고 타짜들은 교도소를 지켜야 하듯이 정치꾼은 정치를 해야 한다. 政者正也라 했으니 정치인은 세상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고 평온해 진다.그것이 순리이고 상식이다. 

대통령이 정치를 하라고 만들어놓은 자리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언행이 정치일수밖에 없다. 김대중 노무현도 세상을 떠났지만 정치권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를 안하고 이문을 남기는 대통령이라... 정치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정치할 능력도 없음을 고백하라. 

수정안은 백년대계인가: 정치일 뿐이다

행정복합도시계획은 잘못된 것이고 수정안은 국가의 50년 100년 미래를 위한 일이라 했다. 세종시 계획은 노무현의 참여정부시절 5년 넘게 위헌판결까지 거치면서 수정된 계획이다. 그것도 여당과 야당이 합의하여 만든 계획이다. 박근혜가 쉽게 수정안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원안을 추진하면 나라가 거덜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럼 한 5년 동안 나라를 망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여당과 야당이 작당을 한 셈이다. 그런 정도라면 내란죄를 묻겠다고 나서야 하지만 그런 소리는 하지 않는다. 수정안이 정략이라는 소리다.

국가대계를 위한 신념으로 수정안을 냈다면 대통령은 먼저 백성들에게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했다. 아니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반대했듯이 대통령후보로 나올 때도 행복도시는 못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때는 표를 의식해서 추진한다고 해놓고 지금은 국가대계를 위해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한다면 "신념"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심지없는 사람을 믿어주는 백성들은 많지 않다. 정총리도 마찬가지다. 그때 그때 바뀌는 신념이라면  그것은 단지 정략일 뿐이다. 신념이라고 아무리 강변을 해도 그것은 단지 기회주의일 뿐이다.

박근혜가 반대를 하고 있다. 표계산을 해봐도 박근혜가 반대를 하면 여당 당론으로 정하는 것도, 국회에서 수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박근혜가 막판에 변심을 해서 야당을 물먹일 수도 있다. 그 전에도 그랬으니까. 어쨋든 수정안이 부결된다면 어찌될까? 정말 국가대계를 위한 신념을 가진 자라면 어찌 할 것인가? 신념이 좌절된 것(백성들이 동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으로 자리를 물러나면서 눈물로 그 진심을 호소할 것이다. 신임을 얻지 못해 자리를 떠나지만 다시한번 국가대계를 위해 생각해 달라며 백성들에게 애원할 것이다. 그런 것이 신념이다.

수정안이 부결되면 이명박과 정운찬은 어찌할 것인가. 최소한 이명박은 자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애초부터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세종시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신념도 국가대계가 아님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결국 정운찬만 쪽박을 차게 될 것이다. 

부결이 되었으니 국회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표정관리를 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박근혜는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동안 수정안으로 논란과 갈등을 빚은 것에 대해 입다물 것이다. 왜 1년여 동안 그 난리를 피웠어야 했는지, 세종시에서 쫒겨난 백성들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모른 체할 것이다. 이제는 수정안이 자기들에게는 "긁어부스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정치요 비열한 정략이다. 

IT강국에서 행정효율이 떨어진다고? 

행정부처가 떨어져 있으면 행정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 나라가 없다고 한다. 일부 행정학자들도 거들고 있다. 그럴듯한 소리같지만 사실이 아니다. 서울서 세종시까지 KTX로 간다면 40분이면 될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있는 펜타곤 시티는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에서 지하철로 한 20분 거리에 있다. 연방행정기관 대부분은 백악관 주위에 있지만 다른 주에 분산되어 있는 기관도 있다. 주정부의  행정기관도 한곳(정부청사)에 몰려있기도 하지만 도시 이곳 저곳에 분산되어 있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가 백악관에서 떨어진만큼 효율성이 떨어진다거나 행정기관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주정부가 망했다는 미국학회의 사례보고는 들어본 일이 없다.

행정부처가 가까이 붙어있을수록 행정효율을 커진다면 이런 이론은 행정학회에 보고되어야 한다. 그 가설이 맞다면 모든 행정기관을 한 도시, 그것도 한 건물에 모아놓아야 한다. 장관들을 한 층에 전부 집합시켜 놓거나 아니면 내무반을 만들어 합숙을 시켜야 한다. 아예 청와대도 없애고 정부청사에 큰 방을 하나 만들어  대통령, 대통령 형, 국회의장, 국회의원, 국무총리, 장관, 차관, 장군을 죄다 몰아넣어 행정효율을 극대화할 일이다. 이렇게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왜 청와대, 종합청사, 총리공관 등을 없애지않는지 의구심이 든다. 청계천을 철거하듯 밀어붙이면 될 일인데...

한국 국방부는 서울에, 계룡대는 논산에 있다. 논산은 세종시보다도 남쪽에, 그것도 계룡산 밑에 있다. 주력병력은 휴전선 근처에 배치되어 있다. 이명박 정운찬식 행정효율로 따지면 미군과 한국군은 망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난 정권시절에 연평해전에서 완벽하게 북한군을 제압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이 행여 펜타곤이 백악관에서 떨어져 있고, 국방부와 계룡대가 청와대에서 떨어져 있어서 생긴 것일까? 대통령에게 40분, 장관에게 50분이 지난 뒤에 보고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단 말인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택시타고 용산으로 가서 장관에게 보고했단 말인가?)

IT 강국 코리아라 그러는데, 행정부처가 떨어져 있다 해서 행정효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디를 가도 엎어지면 코닿을 그런 나라에서 IT강국까지 되었다. 서류처리도 이제는 다 컴퓨터로 한다고 자랑한다. 그런데도 세종시가 행정효율을 떨어뜨린다니 대체 뭔 소린가? 세종시 계획에 통신설비가 빠져있다는 소린가? 아니면 세종시에서는 세종대왕시절처럼 봉화 올리고 파발마 띄우고 인편으로 소식을 전할 계획이란 말인가? 세종시가 무슨 민속촌인가? 아님 세종대왕 드라마 세트장인가? 

대통령이 꼭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공직자가 꼭 만나서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뭐 따로 받아챙길 것을 기대하는 것인가? 세계 최고라는 IT기술은 다 어디에다 써먹는단 말인가. 아무리 패스워드를 몰라서 1주일 넘게 컴퓨터를 못썼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컴맹정권"이라 해도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닌가? 그리 애닯게 바지가랭이를 잡고 있는 미국에서는 고화질화상회의 장비를 활용하여 수시로 질문하고 답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체 무슨 행정효율을 말하는가?

"정운찬 조직론"이 출판되었나?조직에서 통신과 의사소통은 거리보다는 구성원과 조직문화에 더 영향을 받는다. 통신기술이 발달한 요즘에는 거리는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거리가 결정요소라면 그 많은 다국적 기업은 비효율성으로 다 망해서 사라졌을 것이다. 현실은 반대로 통신기술발달과 함께 다국적 기업 시대가 열렸다. 이제는 집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통신기술 덕분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조직구성원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려는지, 얼마나 효율성있고 효과성있는 통신방법을 활용하고 있는지, 얼마나 의사소통에 유리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지이다. 이는 조직론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인데, 거리가 통신과 의사소통을 결정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다. 손나발을 만들어 소리라도 지른단 말인가? 정운찬이 경제학에 이어 조직론 교과서도 출간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명박과 공저로?

장관은 꼭 대통령 면전에서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 세종시에 행정부처를 옮겨서 행정효율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거리 때문이 아니라 의사소통 의지와 능력이 없거나 대면관계(face-to-face communication)만 고집하는 고위직 기술부적응자(컴맹이든 폰맹이든) 때문이다. 요즘시대에 "2MB"라면 아무리 세계 최고 IT기술이 있어도 고조선시대와 마찬가지다. 아이패드를 거울로 쓰고 스마트폰을 분첩으로 사용하는 격이다.

2차원 세계에 사는 자가 3차원 세계를 이해할 수 없듯이 "아날로그"가 "디지탈"을 이해할 수 없다. 반드시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고, 반드시 보고서에다 형광펜으로 줄을 쳐서 VIP를 "알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세종시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당장 봉수대를 몇개 설치해야 하나, 말을 몇필을 사줘야 하나, 미투리를 몇켤레를 사줘야 하나를 걱정할 것이다. 행정효율에 목맬 수 밖에 없는 "아날로그"들의 절절한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자우편이나 화상회의를 상상할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으니 설명을 해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왜 수도는 서울에만 있어야 하나? "관습헌법"은 뭐고 경국대전은 웬말인가?왜 수도는 서울이어야 하나. 또한 왜 행정부처가 서울에만 있어야 하나? "관습헌법"에 의거하여 수도이전이 위헌이라는 판단이 있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어이없는 판결이다. 대체 "관습헌법"이 뭐란 말인가? 그런 식이면 경국대전 이전 시대는 우리 역사가 아니라 중국역사라도 된다는 소리인가? 고려왕조의 개성/철원이나 고구려 왕조의 수도는 "딴나라" 역사란 말인가? 

미국은 흔히 알려진 큰 도시보다는 후미진 도시에 주정부가 위치해 있다. 뉴욕주는 뉴욕시가 아닌 올바니(Albany)에 주정부가 있다. 뉴욕시에 비하면 Albany는 깡촌이다. 미시간 주정부는 대도시인 디트로이트(Detroit)가 아니라 랜싱(Lancing)에 있다. 펜실베니아 주정부는 어디에 있을까? 필라델피아가 아닌 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있다. 세종시처럼 촌스럽고 교통이 좋은 곳이다. 일리노이주는 어떠한가? 미국 전체를 따져도 간판도시라 할 수 있는 시카고(Chicago)가 아닌 역시 촌구석인 스프링필드(Springfield)에 있다. 하지만 주정부가 촌구석에 있어서 망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하면 꾸뻑 죽는 사람들이 왜 이런 것은 말하지 않는가? 결론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일 뿐이다.

한국도 폭발직전인 서울 대신 좀 한갓진 곳에 수도를 두면 안되는 것일까? 행정부처가 모여있어야 한다니 땅값이 싼 시골에 큰 건물 하나를 세워놓고 모든 공무원을 합숙시키면 되지 않겠는가. 땅값도 별로 안들고 행정효율을 극대화시키고 국토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아닌가? 이런 주장을 하면 "관습헌법"을 무시한 죄로 경국대전에 의거 엉덩이 까고 곤장을 맞고 유배를 떠나야 하나? 21세기에 "관습헌법"은 뭐고 경국대전은 또 뭐란 말인가.

약속을 어긴 댓가는 무엇인가? 진퇴양란에 빠진 세종시 수정안

행정복합도시는 시작부터 여러가지 의견이 대립되어 난항을 겪은 뒤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로 시작된 국가계획이다. 개인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미 법령으로 정한 일이다. 국가 구성원간 약속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시행도 하기 전에 뒤집겠다는 것이다.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을 스스로 뒤집겠다는 것이다. 국토균형개발이라는 대의는 어디가고 근거없는 효율성만 남았다. 서울집중으로 인한 폐해가 있고 그 규모가 참을 수 없는 수준임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 폐해는 말하지 않고 그저 세종시 원안을 추진하면 행정효율이 떨어지고 나라가 거덜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운찬 경제학"이라면 몰라도 동서양 행정학과 정책학 교과서를 뒤져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50만명이 살 도시 하나 만든다고 나라가 거덜난다는 이론이나 사례를 대보라! 오랜 옛날 왕들이 사치스런 왕궁을 짓고 운하같은 토목공사나 무모한 전쟁을 강행하다 망한 경우는 있다.) 

수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내세운 "백년대계"와 "행정효율"이 그저 구차한 핑계로 들리는 이유다. 이명박이나 정운찬이 인정하기 싫겠지만 세종시계획도 백년대계와 효율성을 고려한 계획이다. 5년여 동안 이해당사자들이 치고박고 해서 결정한 계획에 그런 것이 없었다면 백성들은 물론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5년간  치열하게 싸워서 만든 계획안은 나라를 거덜내는 것이고, 고작 몇개월 동안 뚝딱 정당한 의견수렴없이 만들어낸 수정안은 행정효율을 높이는 백년대계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행정효율을 위해 정책과정은 수단방법가리지 말고 번개불에 콩궈먹듯이 해야 한다고 정책학 개정판을 내야 한단 말인가.

만일 행정복합도시계획을 뒤집어 정부기관 이전을 백지화한다면 참으로 큰 혼란이 있을 것이다. 벌써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도시계획도 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충청권은 물론 다른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다 해도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을 유치한다면서 황당무계한 약속을 남발했던 것을 어찌 수습할 것인가. 사업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세종시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수정안 때문에 세종시계획이 사실상 중단된 것도 커다란 손실이다. 기업도 기업이지만 가장 큰 피해는 해당지역 백성들이 보게 되어 있다. 국토균형개발이란 대의에 따라 고향 땅을 내어주고 타향으로 떠난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가 극에 달할 것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정치학에서 우려하는 정부불신을 자초하는 것이다. 멀쩡한 국가사업을 건드려 사회분란을 일으키고 엄청난 비용만 낭비한 셈이다 

이 모든 것이 비용이다. 세종시 수정안 자체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수정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는 피를 보게 되어 있다. 정치를 해야 할 사안(효율성이 아니라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관리해야 할 사안)을 "효율"로 접근한답시고 밀어붙이다가 수습하기 어려운 함정에 빠진 셈이다. 하라는 정치를 못하여 일만 그르친 셈이다.  

치졸한 정치보복과 "정책보복"

더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 정치인들이 온갖 달콤한 말로 표를 모으고 당선되어서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빼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정치보복에 이어 "정책보복"이 난무할 것이다. 이명박 이후에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당장 행복도시 수정안을 묻어버릴 것이다. 이명박이 했던 바로 그 방법대로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여 초고속으로 뚝딱 해치울 것이다. 급하면 탱크라도 동원해서 날치기를 할 것이다. 물론 한반도 대운하를 빙자한 4대강 보건설 사업은 전면 중단될 것이다. 무리한 사업을 추진했거나 동조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고 재산을 헌납해야 할 상황이 올는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다.

다시 이명박 후예들이 정권을 잡으면 또 뒤집을 것이다. 4대강도 파고 대운하도 뚫는다고 밤샘작업을 할 것이다. 전정권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은 또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일부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비굴하게 자신이 한 일을 부정할 것이며, 일부는 또 바위 꼭대기에서 몸을 던질 것이다. 더이상 파낼 강이 없다면, 멀쩡한 산을 삽으로 떠다가 황해를 메워 중국으로 가는 길을 만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GNP를 올리는데 대규모 토목공사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에 단골로 출연하여 다 나라의 백년 미래를 위한 일이고 고용을 창출하는 길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필요하면 도지사, 시장들을 데려다가 적당히 겁주고 알아서 기게 할 수도 있다. 반대하는 국회의원들 뒷조사를 해서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이것이 정치보복이고 "정책보복"이다. 사회구성원이 합의한 약속을 깨는 것은 참담한 귀결로 이어진다. 개인이 세종시계획을 좋아하든 말든 그것이 사회의 약속이라면 지켜져야 한다. 계획을 추진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때 그때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보완하면 된다. 이것이 원칙이고 상식이다. 이것이 없으면 야만인들이나 하는 정치보복과 "정책보복"을 피할 수 없다. 치졸하고 야비한 짓이다. 정녕 이것을 원하는가.

원칙과 상식과 교과서에 충실하라: 세종시 수정안은 "나쁜 정략"일 뿐이다 

나는 행정복합도시 계획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계획이 오랜 시간 논란을 거쳐 이해당사자들이 합의를 한 것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준다. 정치학, 행정학, 정책학에서 모범 사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종시 수정안은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낙제점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과정과 정책과정으로 봐도 그러하고, 멀쩡한 국가사업을 정략으로 중단시키고 다른 국가사업을 흔드는 것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논란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예산을 낭비하고 해당지역 백성들에게 고통을 준 것으로 보면 내란죄를 물어야 할 지경이다. 

정말 세종시계획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면 수정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증명해 보이고, 행정복합도시계획에 필적하는 대화와 타협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상이다. 또다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해당사자들에게 일일이 이해와 동의를 구하여 합의한다면 그 누구도 수정안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자들이 참여하는 것을 봉쇄하고 번개불에 콩궈먹듯이 뚝딱 만들어 밀어붙인다면 스스로 수정안이 엉망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근거도 없이 그때 그때 둘러대는 변명은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뜬금없이 세종시계획은 행정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하고 나라를 거덜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세종시계획의 문제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종시계획(노무현)을 혐오하는 개인취향을 밝히는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못하는 짓이다. 아무리 다른 차원을 살고 있는 "2MB"라지만 나쁜 정략으로 원칙을 거덜내고 상식을 거덜내고 있다. 

스스로 정략으로 수정안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백성들에게는 정략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훈계하는 대목은 정말 사람을 참담하게 만든다. 부결되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4대강 삽질에 몰두할 "수정주의자들"이 사람을 어이없게 만든다. 정치학, 행정학, 정책학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초라하고 부끄럽고 허무하게 만든다. 분노하기 이전에 한없이 서글플 뿐이다. 

2010.6.18(2010. 1. 12 초안; 수정: 20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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