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쉽"이 영어사전에 안나온다고요?

드라마나 연예인이 나와 말장난을 하는 방송을 보면 수시로 영어단어가 튀어나온다. 어떤 이는 토씨만 빼고 영어단어(영어 표현이 아니라)를 쏟아낸다. 자신의 지식수준과 전문성이 이 정도라고 뽐내고픈 속내가 드러난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돋보인다고 믿는 강박감에 차라리 측은함과 애처로움을 느낀다. 또한 그런 천박한 세태를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방송을 지켜보면 절반은 그런 대로 맞는 영어단어를 쓰는 것같은데, 나머지 절반은 뜻이나 용례나 발음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다. 물론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방송에서도 불가능하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뉴스나 드라마에서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서 외국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수준은 기대 이하다. 제대로 된 영어표현도 아니고 그냥 한국어 문법에 영어단어를 적당히 (뜻을 제대로 모른 채) 박아넣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콩글리쉬 (Konglish)를 남발하는 모습은 아연실색이다. 참담할 따름이다.

가장 황당한 영어단어는 스킨쉽(skinship)이다. 어느 방송번호를 누르든 간에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다. 부모와 아기가 친근한 접촉을 통해 서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주로 남녀 사이의 신체접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같다. "스킨쉽이 있었나요?" "스킨쉽 전략" 등으로 사용된다.  

스킨쉽이 황당한 이유는 그 단어가 영어단어처럼 생겼지만 영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영어단어가 아니라는 소리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Physical_intimacy)에서 "physical intimacy"를 설명하다가 일본에서 기원했다는 스킨쉽을 소개한다. スキンシップ (스킨쉬쁘)라고 한댄다. 행여 kinship을 착각하여 이리 황당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Urban dictionary (http://www.urbandictionary.com/define.php?term=skinship)에서는 스킨쉽이 한국에서 유래했고 일본과 한국에서 사용하는 뜻을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스킨쉽이 영어사전에 실려있지 않고, 따라서 대부분 영어권 사람들이 그 뜻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황당한 이유는 스킨쉽을 남발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스킨쉽이 영어단어인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영어권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사람들조차 스킨쉽이 영어사전에 나와있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어휘 구조로 치면 엉터리 영어단어에 가깝지만 단어 생김새로 보면 영어단어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킨쉽이 영어사전에 없다는 것을 아냐고 물으면 대부분 놀라움을 표한다.

"뭐? 스킨쉽이 영어사전에 안나온다고? 정말?"

그런 반응을 접하면서 나는 어이가 없고 뒷끝이 씁쓸하다. 언어의 성질에 비추어 보면 콩글리쉬라 하여 무작정 비난할 것은 아니지만 "스킨쉽"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영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를 쓰는 것이 엉터리여서 부끄럽고 어이없는 것이 아니다. 매일 사용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없이 마구잡이로 쓰는 태도 때문이다. 뭐라도 영어단어같이 생겨먹은 것을 써야 속이 시원한 그 열등감 때문이다.

또한 "동방예의지국"에 어울리지 않게 남녀지정을 의미하는 "스킨쉽"을 남발하고 있는 우리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틈만나면 입을 맞추고, 볼을 비비고, 서로 안고 난리를 치는 영어권 사람들은 정작 스킨쉽에 해당한다는 physical intimacy라는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을 단 한명도 만난 적이 없다. Intimacy라는 단어는 남녀지정을 은연 중에 내포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상식에 가까운 얘기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남녀성에 관련된 단어를 (특히 방송에서) 많이 가려서 사용한다.

그런데 남녀칠세부동석(
男女七歲不同席)이라던 한국에서는 "스킨쉽"을 방송에서까지 남발하고 있으니 참으로 세월이 무상할 따름이다. 어쩌면 "스킨쉽" 남발은 수없이 보도되는 한국사회의 성폭력과 성희롱 수준을 넌지시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멀쩡한 대낮에, 그것도 방송에서조차 그 낯뜨거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정도라면 안보이는 데서는 무슨 짓인들 못할까. 또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성폭력과 성희롱에 연루되어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텨내는 배짱을 보라. 애나 어른이나 만지고 주무르고 때리는 것이 "언어로 일상화된" 사회에서,  그 행위를 의미하는 스킨쉽이 수요가 증가하고 주체할 수 없이 남발되는 사회에서 친숙한 풍경 아니겠는가? ("귀여운 비약"을 용서하시라)  

조선시대의 엄격한 규범에 짓눌린 남녀지정을 이제사 마음껏 펼쳐보이고 싶은 것인가? 그 5백년 동안 "억눌린 욕망"이 폭발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뿌리도 모르는 "스킨쉽"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또 그런 단어가 필요하다고 해도 한국어로 쓸 일이고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걸핏하면 "막장드라마"라느니 "얼굴이 화끈거린다"느니 하면서 방송을 비판하면서도 왜 근본도  없는 "스킨쉽"에는 그리도 관대하단 말인가? (영어권에서 intimacy를 입에 달고 동네방네 다니다간 쫓겨나기 십상이다). 길라임과 김주원이 사랑스럽게 뽀뽀를 하는 것은 안되고 스킨쉽을 했네 안했네, 어디를 했네, 어디서 했네, 몇번 했네는 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가.

그렇다고 동방예의지국이니 조선시대로 돌아가 도포입고 갓쓰고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며 에헴하자는 소리는 아니다. 영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는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오렌지"도 아니고, "영어심화교육"에서 권하는 "오뢴지"도 아니고, 버터를 찍어바른 것처럼 "어린지"로 발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찌 그 단어가 만들어졌고,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따져보자는 것이다. 또 단어가 만들어졌다 해서 마구잡이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려서 쓰자는 것이다.

제발 "스킨쉽"을 자제해줬으면 한다. 멀쩡한 대낮에 왜 그리 "낯뜨거운 짓"을 한단 말인가? 혼자있을 때와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를 구별해야 할 일이다. 언어로 똑바로 표현해야 할 것과 최소 언어로 에둘러 표현해야 할 것을 가려야 할 일이다. 스킨쉽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지나치게) 필요한 상황 자체가 정상이 아니질 않은가. 제발이지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제대로 인식하고 더이상 엉터리 단어를 남발하는 "낯뜨거운 짓"을 그만 했으면 한다. 이제는 좀 품위를 생각할 때가 아닌가... 이만 하면 밥먹고 살만하지 않은가?

2011.5.7

덧쓰기: 사진찍는 사람들은 "핀보케 (pint-boke)"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Pint와 흐리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보케"를 붙여서 만든 단어인데 영어권에 수출하여 사진계에 정착되었다고 한다 (한호림 외. 2010.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어. 디자인하우스). 그렇다면 우리도 "스킨쉽"을 수출하여 "한류"를 세계만방에 알려야 하는가? 근데 근사하고 멋있는 한국어 단어도 많은데 왜 하필 그런 "부적절한" 단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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