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없는 "집시법"을 폐지하라

"공공"은 없고 "그물질"만 있는 "집시법"을 폐지하라
지난 해 9월 헌법재판소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집회를 금지한 것이 헌법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이달(6월) 말까지 개정하도록 했다. 현재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여당안과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일부 지역에서만 금지하는 야당안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집시법 논란"이 불쾌하다. 애초부터 논란거리도 아니며 논란거리가 되어서도 안되는 상식과 양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법(형법)을 적용해도 될 일을 가지고 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왕조시절부터 형법으로 백성을 옥죄는 데 일가견이 있던 나라아닌가. 

낮에는 괜찮고 밤에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10시부터 하면 되고, 12시부터 하면 안되는 근거는 무엇인가? 문화예술행사는 되고 정치행사는 안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이젠 시위할 때 복장까지 이래라 저래라 한다니 갈수록 태산이다. 결국 집시법은 "엿장수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법이라는 그물을 만들어 놓고 백성을 몰아서 "그물질"하겠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물질"을 하면서 내세우는 대의가 "공공"이다. 집회와 시위로 인해 발생하는 재산피해, 영업피해, 소음피해 등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공공성(publicness)을 빙자한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공공(public)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말함인가. 공공의 이익이란 무엇일까? 왜 집시법이 보호하고 싶은 것이 "공공"이 아니란 말인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공공(public)이란 무엇인가?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 "공공"이고 보호해줄 가치가 있느냐이다. 단순히 한사람이면 개인이고 두사람 이상이 모이면 "공공"인가? 한사람은 보호해줄 가치가 없고 두사람 이상이면 보호해줘야 하나? 길거리를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은 "공공"인가? 그렇다면 보호해줘야 하는 그들의 이익(이해관계)은 무엇인가? 모두 상식으로 봐도 말이 안되는 소리다. "공공"을 정의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좀 더 정교한 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John Dewey가 1927년에 쓴 The Public and Its Problems를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책학(public policy)에서 고전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듀이(Dewey)에 따르면 공공(public)은 (어떤 행동의 귀결에 의해) 간접으로 심각하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조직한 집단이다. "Those indirectly and seriously affected for good or for evil form a group..." (p.35). 어떤 행동의 귀결 (consequences)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인식하고 선의든 악의든 자신들의 이해를 대표할 조직(정부든 뭐든)을 만드는 것이다. 

경제학 원론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공재(public goods)나 외부성 (externality)을 설명하는 글처럼 들릴 는지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공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으로 인해 직접 영향을 받는 것보다는 간접 영향을 받는 것이며, 그 영향도 심각해야 한다는 것이며, 공공의 지향이 선(good)일 수도 있고 악(evil)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심각한 직접 영향": 재산권, 영업피해, 소음공해는 이유없다

"심각한 간접 영향"은 어떤 행동에서 비롯된 결과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인과관계 (행동-->결과)가 바로 연결 (direct)되기보다는 인과고리로 연결된 간접 (indirect) 관계라는 것이다. 또 그 영향이 심각해야 한다. 그런 심각한 간접 영향이 존재하고,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 영향을 인지하여(recognize) 조직화를 시도했다면 그것이 바로 듀이가 말한 "공공"이다. 왜 직접 영향은 "공공"에서 제외되는 것일까? 대개 인과관계가 분명하여 당사자들끼리 협의하여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public)이기보다는 개인일(private)이다. 

그러면 촛불시위나 월드컵 응원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 발생한 "간접 영향"은 무엇인가. 그 정도가 "심각하여" 보호해 주어야 할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촛불시위가 일어났던 인근 상가와 사무실은 해당사항이 없다. 월드컵 응원이 벌어진 장소 근처에 있는 사무실이나 아파트도 해당사항이 없다. 촛불시위가 벌어진 근처 상가에서 영업을 제대로 못했다면 심각한 영향일 수 있으나 간접 영향은 아니다. 시위에서 북과 괭과리를 쳐서 그 소음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면 심각한 직접 영향이다. 한국과 나이지리아 축구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함성 때문에 잠을 설쳤다면 그것 역시 간접 영향이 아니라 직접 영향이다. 

어떤 가게는 촛불시위로 매상이 늘었을 수도 있고 (예컨대, 음료수가게나 양초공장) 시위 때문에 가게가 망가졌을 수도 있다. 또 응원 때문에 재미를 본 가게(예컨대, 통닭집이나 맥주집)도 있고 잠을 설친 "선량한" 시민도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에 참가하여 재미와 보람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응원하면서 감동과 기쁨을 만끽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 때문에 청와대 뒤산에 올라가서 반성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겁대가리 없는" 새벽 응원 때문에 신이 나서 경기에서 더 열심히 뛴 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의든 (바람이나 기쁨) 악의든 (영업방해나 잠설치기) 관계없이 모두 직접 영향이다. 그 심각성과 무관하게 "공공"으로 볼 수 없다.

"심각한 간접 영향": "공공"이 심각함을 말해준다

간접 영향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떻게 심각성을 알 수 있을까? 간접 영향은 대개 물질보다는 정신,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만질 수 있는 것보다는 만질 수 없는 것이다. 심각한 정도는 주관에 따른 것이어서 객관으로 보는 잣대로 측정하기 어렵다. 

촛불시위와 월드컵 응원이 미친 "심각한 간접 영향"을 생각해 보자. 예컨대, 촛불시위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아니라) "백성들의 뜻을 외면하는 정권에게 아니라고 외치는 것"이 민주주의임을 깨닫게 되었다면 어떠할까? 월드컵 응원을 전해들은 외국인들이 (응원에 참가하지 않은) 한국인들의 열정을 알게 되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면 어떠할까? 아마도 심각한 간접 영향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주고받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닌 공공재(public goods)이다. "심각한 간접 영향"을 받았다 해도 사람들은 (국가위기가 아니라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조직화를 시도하지도 않을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니라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상식이다.  

"심각한 간접 영향"이 표면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영향이 좋은(positive) 쪽이 아니라 나쁜 (negative) 쪽으로 미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그것도 참기 어려운 나쁜 간접 영향인 경우에 그러하다. 조직화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시간도 소비해야 하고 때로는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간접 영향"을 받았다 해도 어지간하면 대충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매우 "심각한 간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공공"을 형성한다. "공공" 그 자체가 심각한 정도를 말해준다. 즉, "공공"이 있은 후에야 간접 영향이 심각했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촛불시위와 월드컵 응원 자체가 공공이다

촛불시위와 월드컵 응원을 다시 생각해 보자. 촛불시위와 월드컵 응원이 "심각한 간접 영향"을 초래한 행동이 아니라 "심각한 간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행동"일 수는 없을까? 촛불시위는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백성의 뜻을 무시하고 정부가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협상을 벌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협상 당사자 (정부)도 아니고 협상 결과 쇠고기를 수입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피해 (광우병)를 우려하여 거리에 나온 것이다. 협상이 초래한 "심각한 간접 영향"을 인지하고 그들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공공"을 형성한 것이다. 그것이 촛불시위이며 그 자체가 "공공"이다.

월드컵 응원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월드컵 경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시민들이 상금을 받는 것도 아니며 병역혜택(주어진다면)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응원이 정말 선수들을 힘내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붉은 악마가 12번째 선수로 정말 경기장에 난입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표선수들이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경기를 즐기자는 것이다. 축구 때문에 사람들이 응원을 하는 것이지 응원때문에 대표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서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새벽까지 밤새워 응원하고 출근하는 그 열정은 분명한 "심각한 간접 영향"이다. 기꺼이 시간과 비용과 위험 (성추행, 절도, 질병 등)을 감수하고 나올만큼 간접 영향이 크다는 소리다.   

촛불시위나 월드컵 응원은 그 자체가 "공공"이다. 같은 간접 영향을 심각하게 받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공공"을 형성한 것이다. 듀이가 말한 "공공"에 꼭 들어맞다. 촛불시위는 정치집회라서 안되고 월드컵 응원은 문화예술행사라서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을 반대하는 고등학생들이 노래부르는 촛불은 정치고 군복차려입고 화형식한다며 불붙이는 가스통은 문화예술이란 말인가? 차라리 촛불시위는 자신을 비난하니까 싫고 월드컵 응원은 대표팀 성적을 올려 자신에게 유리하니까 좋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하다. 

촛불시위나 월드컵 응원 모두 귀중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다. 정치학과 행정학에서 지향하는 시민사회 모습이며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원하는 생동감있는 시민참여 모습이다.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이며 "다이내믹 코리아"를 상징한다. 사회갈등을 초래하는 문제거리가 아니라 백성들의 상식과 지혜와 열망을 담고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집시법"으로 규제받고 억압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반도체나 휴대폰보다도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명품 공공"이다.

청와대에서 뺨맞고 광화문에서 화풀이? 대표팀은 윌드컵에 나가지 말라?
촛불시위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집단소송이다 뭐다 한다지만 "공공"이라는 면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굳이 말한다면 무리한 쇠고기 수입협상 때문에 (촛불시위때문이 아니라) "심각한 간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원인행위를 한 청와대가 아닌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소송을 건 것이다. 청와대에서 뺨맞고 광화문에서 화풀이를 하는 셈이다. 촛불시위로 부당하게 피해를 봤다면 (직접 영향) 일반 법절차에 따라 "주고 받기"를 하면 그만이다. 집단소송을 추진한 사람들이 "공공"이라면 청와대에 쇠고기협상을 똑바로 하라고 (그래서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게) 요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청와대에 뭐라 쓴소리를 하고 피해보상을 요구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촛불시위가 공공선을 추구했는지 소송을 제기한 가게주인들이 공공악을 쫓은 것인지는 전혀 별개 문제다. 

월드컵 응원도 마찬가지다. 잠을 설친 것이 "공공"으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응원하는 시민들이 아니라 차라리 월드컵 혹은 월드컵에 진출한 대표팀을 걸고 넘어져야 한다. 그것이 "심각한 간접 영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응원으로 잠을 설쳐서 심각한 피해를 본 "공공"이라면 축구협회나 축구대표팀에게 월드컵에 나가지 말라고 압력을 넣거나 축구없는 세상에서 살기위해 법제정(축구 및 응원 금지법)을 시도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어처구니 없는 소리다. 응원하는 것이 선인지 응원은 내팽개치고 편히 잠자고 싶은 사람들이 악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공"이라면 그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느 편을 들어줘야 하는가? 어떤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보호해 줄 가치가 있는 "공공"은 무엇이고 없는 "공공"은 무엇인가? 

"공공"은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다: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흔히 "공공"이라는 하면 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듀이의 개념에서 보면 "공공"은 선한 것일 수도 있고 악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선과 악은 판단하는 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 상식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몰상식이 되기도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치를 반대하는 촛불시위는 선을 추구한 것인가? 아니면 악을 추구하는 것인가? 한국과 나이지리아 경기에서 한국을 응원한 것은 공공선인가? 촛불시위때문에 장사가 안되니 촛불시위를 막기 위해 집단소송을 벌이는 것은 선인가 악인가? 새벽 응원으로 밤잠을 설쳤다고 항의하거나 한국이 나이지리에에 참패할 것을 응원하는 것은 어떠한가? 애국심이 없는 악이라 비난해야 하는가? 밤새워 응원하면 애국이고 대표팀이 경기를 하는데 퍼자고 있으면 "이적행위"인가? 

"공공"이 선도 추구하지만 악을 추구할 수도 있다면 어떻게 선과 악을 구분할 것인가? 어쩌면 상식에 가까운 얘기인지도 모른다. 툭하면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듯이 상식이니 이성이니를 내팽개치고 재판소에 물어볼 문제일는지도 모른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 입장에서 어떤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과 고통을 합하여 더 큰 즐거움을 주는 행동을 선으로,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을 악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행복과 고통을 정의하고 합산한단 말인가? 이러한 접근법은 대개는 독재자나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입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 사용되곤 한다. 

어떤 "공공"이 선이고 어떤 "공공"이 악인지를 판별하는 규칙이나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리주의든 뭐든 그 어떠한 방법도 결국은 그 사회의 상식과 백성들의 지혜를 피해가지 못한다. 누군가가 혼자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일을 막는 방법이다. 민주주의가 그런 것이다. 자기 (정권)가 좋아하는 것은 허용하고 싫어하는 것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억압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저녁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집회를 하지 못한다느니 얼굴을 가려서는 안된다느니 한다면 이미 스스로 선악을 판단한 것이다. 시위는 정치행위이고 응원은 문화예술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필요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쓰겠다는 소리다. 백성들의 상식과 지혜를 무시하고 법이라는 이름으로 선악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백성을 "그물질"하는 짓이다.     

백성의 상식과 지혜: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한다어떻게 백성의 상식과 지혜가 "공공"의 선과 악을 결정하는가? 물론 법정에서 판사가 유죄나 무죄를 판결하듯 선과 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선이나 악이라로 단정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백성의 상식과 지혜가 아니다. 

백성들이 모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촛불시위를 예로 들어 보자. 그 많은 백성들이 매일 밤 모인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백성들은 소중한 시간과 비용과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려는 사람들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사안이 사회와 자신에게 중대하다고 느꼈다는 얘기다. 높은 자발성을 가졌다는 얘기다. 그 느낌을 정권과 제도가 제대로 받아들여주지 않기 때문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정확히 "공공"이다. 

혹자는 누군가 선동을 해서 그랬다고 하고 철없는 애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놀러나온 것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그 느낌"이 아니라면 100일 넘게 지속되는 촛불시위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관광버스로 사람들을 실어와 세를 과시하고 일당을 주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일이다. "공공"을 머리수로만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일이다.

백성들이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편지를 쓰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하고,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길거리로 나가 시위하는 것은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참여자의 희생 (시간, 비용, 위험)을 요구한다. 그만큼 참여자가 느끼는 문제의식이 강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권에게 주는 충격이 다른 방법에 비해 매우 강하다. 독재정권이 집회와 시위를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파편화된 백성은 허약하기 그지없지만 "깨어있는 백성들의 조직화된 힘"은 그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백성들도 있다. 가끔씩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얼마동안 구호를 외치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화형식을 거행하기도 하고, 가스통을 들고 나와 폭파해버리겠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공공"이라는 지위를 갖기 힘들다. 쇠고기 수입협상과 별로 관계가 없고 그저 촛불시위에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간접 영향"을 발견하기 어렵다. 30개월 이상된 미국 쇠고기를 먹지 못해 정신이 극도로 혼미해졌다거나 사망직전에 이른 사람들이 가스통을 굴리고 나온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어떻게 하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쇠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발성보다는 동원에 가깝고, 이성과 합리성보다는 충동과 습관에 가깝고, 지속성이 없는 일회성에 가깝다. 또한 그들의 이해관계는 정파성(partisanship)과 물질(보조금)로 구성되어 있다. (참여연대에 대해 보조금을 끊으라고 말한다. 이해관계를 자인한 말이다.)

월드컵 응원도 마찬가지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 많은 사람들이 일당을 받고 밤새워 목이 쉬어라 응원했다고 보기 어렵다. 관광버스로 사람실어나르는 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일당 3만원씩만 쳐도 얼마란 말인가? 축구대표팀이 선전하기 바라는 마음이 심각하여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왔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축구때문에 드라마를 보지 못해 정신이 어지럽다거나 잠을 설쳤다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응원소음같은 "직접 영향"을 받은 것에 대한 반응이다. "간접 영향"을 심각하게 받았다면 대표팀이 월드컵에 나가는 일을 막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추진한 "공공"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 법에 있든 없든 그것이 백성의 상식이고 지혜이다.  

결국 누가 선한 "공공"인지 악한 "공공"인지를 구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이 백성의 상식과 지혜이다. 백성들의 상식과 지혜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삶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자발성으로 길거리로 나서는 백성들이야 말로 "공공"이다. 그것에 순응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맹자의 말대로 자기에게 이로움만 따지는 자와 의로움을 따르는 자가 있을 뿐이다. 

"집시법"은 집회와 시위를 억누르려는 것이다

"집시법"이 피해를 보는 가게와 소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공공"이란 차원에 보면 전혀 엉뚱한 소리다. 그것은 심각할 수도 있는 "직접 영향"일 뿐이다. 그런 피해가 있다 해도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예컨대, 집단소송) 구제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법과 개인 간 협의를 통해 해소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 문제를 "집시법"으로 해결하겠다니 애초부터 "집시법"은 번지수를 잘못찾는 것이다. 

집회와 시위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돈받고 원하지 않는 체하는 사람도 있다.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해도 모두 "공공"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심각한 간접 영향"이 자연스레 질서를 잡아준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축구금지법"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다. 껌과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안그러면 죽도록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그런 행위를 보호하고 촉진하는 법을 만들지 않는 이유다. 흡혈과 살인이 취미이고 그것을 하지못하면 죽을 만큼 고통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흡혈보장법"이나 "살인촉진법"을 제정하기 위해 시간과 돈과 위험을 무릎쓰고 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이 없는 이유다. 백성의 상식과 지혜로 교통정리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 집시법은 자신이 집회와 시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만든 법이다. 시위로 피해를 보거나 응원 소음 때문에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구차한 변명이다. "공공의 이익"이라지만 그것은 "공공"도 아니며 법으로 보호해야 할 이익도 아니다. 자기가 축구가 싫다고 "축구금지법"을 만든 것이다. 그러고서는 많은 백성들이 열광하며 즐기든 말든 숙면을 원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추진했다고 둘러대는 것이다. 본인이 빨간색을 싫어하니까 "빨간색금지법"을 만들고, 왼쪽을 싫어하니까 "우측통행법"을 만든 짓이다. 금연이 싫기 때문에 "금연금지법"을 만들어 "흡연인구 저변"을 확대하는 짓이다. 다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공공이 되고 일일이 선악을 판단하여 가르쳐주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다. 집시법이 어이없는 까닭이다. 

"집시법" (개정안 포함)은 아무리 좋고 봐도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 및 시위를 탄압하는 법률일 뿐이다. 백성을 그물질하는 도구일 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현행 "집시법"은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와 시위에는 그토록 가혹하면서도 정부를 두둔하거나 정부에게 이익이 되는 집회와 시위에는 인자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이다. 촛불은 정치행위이고 가스통은 문화예술행위인가? 촛불을 위험한 폭력이고 화형식과 가스통은 문화인가? 월드컵 응원은 문화예술행사라서 괜찮다면서 스포츠 (예컨대, 피겨 스케이팅, 올림픽, 월드컵)를 정치에 이용해 먹는 것은 또 무엇인가? 결국 법을 밀어붙여 만들어 놓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과 악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10시든 12시든, 정치행사든 문화행사든 다 평계일 뿐이다. 한마디로 백성의 상식과 지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류역사 전체를 통털어 모든 독재자들이 했던 짓이다. 

"집시법" 개정? 폐지가 정답이다

"집시법" 개정이 안되면 난리가 날 것처럼 떠들고 다닌다. 난리가 나는 것은 백성들이 아니라 집회와 시위를 혐오하는 사람들이다. 백성들의 뜻을 거스르고, 백성들과 소통하는 것을 거부하고 백성들의 상식과 지혜가 모이는 것을 본능으로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놓고 백성들이 화가 나서 거리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집회를 할 것도 아니면서 백성들의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덩치들"을 동원하여 새벽부터 줄서서 집회신고를 해야 하는 자들이다. "집시법"은 "공공"이 아니라 그런 자들을 비호할 뿐이다. 유령집회때문에 허구헌날 유령광장이 되는 판에 10시니 12시니 그러고 자빠졌으니 참으로 가관이다. 

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 필요한가? 헌법에 집회와 결사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써있지 않은가? 더구나 "집시법"이 근거로 내세우는 "공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의 귀결이 심각할 수는 있으나 대개 "직접 영향"이기 때문이다. 일반 법률(형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정말 문제라면 집회와 시위가 아니라 그것을 촉발하는 나쁜 정치와 나쁜 범죄일 뿐이다. 먹고 살기 바쁜 백성을 거리로 내모는 정치이며, 백성의 등골을 빼먹고 나서 책임을 회피하는 나쁜 범죄자들이 있을 뿐이다. "집시법"으로 거리에 나선 백성을 "그물질"할 것이 아니라 나쁜 정치와 범죄를 단죄하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공공"이 없고 "그물질"만 있는 "집시법"은 땅에 묻을 일이다. 10시 12시가 아니라 폐지해야 마땅하다(지금 애들 취침시간을 정하나?). 정치행사니 문화행사니 말장난으로 백성들을 화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통령 형이나 시장 맘대로 집회를 주물럭거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령집회를 위해 "덩치들"이 창구 앞에서 죽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 모든 어처구니 없는 일은 집시법을 폐지하면 해결된다. 애시당초 이 나라 주인인 백성들이 그들의 상식과 지혜로 결정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공공"의 이름으로 묻을 일이다.

20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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